고령화시대, 만성폐쇄성폐질환 유병률 높아만 간다

▲ 서효석 편강한의원 대표원장

우리가 어떤 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공통어가 무엇일까? ‘급성(急性)과 만성(慢性)’이다. 대체로 아직 골수에 박힌 병이 아니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난 질병을 급성이라 하고 이는 치료도 바로 되는 경향이 있다. 만성은 이미 병이 오래 되어 치료가 잘 되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그런데 만성 질환의 ‘慢(만)’이라는 글자가 나는 재미있다. 원래 뜻대로 하자면 ‘曼’이 더 맞다. 曼자는 ‘길게 끌다, 퍼져 자라다’라는 뜻이 우선이고, 慢은 ‘거만하다, 게으르다, 느슨하다’라는 뜻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많이 진행된’ 병의 증상으로 봐서는 曼이 더 합당하다. 그럼 왜 ‘曼性’ 질환이 아니라 ‘慢性’ 질환이라고 했을까?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심방 변(忄)을 붙임으로서 그 질환이 반드시 육체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거만하고, 게으르고, 느슨한’ 마음상태에서도 온다는 뜻을 가미한 것이다. 이까짓 병쯤이야 하든지, 또는 좀 있다 고치지, 또는 치료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등등으로 차일피일 하다가 그야말로 만성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질병은 만성이 되기 전에 고치는 것이 현명한데 사회적 병리현상도 그렇다. 얼마 전에 계모가 여덟 살 난 딸아이를 때려서 숨지게 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으면 갈비뼈가 열여섯 대나 부러졌겠는가? 그 아이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오고 인간이 얼마나 악독할 수 있는가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세상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하다. 예전 같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난리가 날 법한데, 하도 상상 초월의 범죄가 만연하다 보니까 그런 사건쯤은 그야말로 만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질병과 꼭 같이 만성이 될수록 고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은 빤하기 때문에, 세상이 걱정된다.

각설하고, 우리의 본론으로 돌아오자. ‘慢性’을 길게 설파한 이유는 이제 이야기할 병이 COPD, 즉 만성폐쇄성폐질환(慢性閉鎖性肺疾患)이기 때문이다. 인생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 누구나 나이 85~100세에 이르면 죽음의 계곡이 도사리고 있다. 폐기종, 기관지 확장증, 폐섬유화라는 저승사자가 계곡마다 호시탐탐 목숨을 노린다. 이 중 폐기종과 기관지 확장증은 중간에 서로 만나 콤비로 활동하며 환승이 되므로 묶어서 COPD라 한다. 폐섬유화는 개인플레이를 하는데, 이놈들이 득실거리는 3갈래 길을 무사히 지나야 100세 동산으로 갈 수 있다.

물론, 사람은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다. 젊어서는 암, 중풍, 기타 심혈관 질환으로 죽지만, 팔순이 넘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COPD나 폐섬유화 같은 중증 폐질환이다 보니 고령화시대를 맞아 유병률이 높아만 간다. 유럽에서 COPD 환자들에게 삶의 질을 물었더니 61%가 “죽는 것보다 더 나쁜 상태”라고 표현했다.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COPD 악화를 경험해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다. 연이은 기침에 가슴은 멍이 든 것처럼 아프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발을 뗄 수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밥 한술 뜰 수도 없는 불편함과 서러움을 말이다. 지면 관계상 COPD에 대한 상세 설명은 다음 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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