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이자 협성대 겸임교수 이애리. 사진=김윤배 기자

“열정에 대한 인정, 도전을 향한 자극제”
1996년 이후 국내외서 개인전 37회 개최

여성화가이자 협성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그림은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주고,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제공한다”
“나는 개인의 특성과 꿈을 키워주는 따스한 카리스마를 지닌 교육자이고 싶다”

[일간투데이 강근주 기자] “너무 기쁘다. 좋다. 한편으론 훌륭하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가 많은데, 내가 상을 받게 돼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인정이고, 좀 더 열심히 해보라는 자극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화가 이애리가 함박웃음 지었다. 그 웃음에는 은은한 부끄러움이 묻어난다. 역시 화가, 예술가답다. 지천명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도,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 순수함과 풋풋함을 풍긴다. 제33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 시상식에서 그는 심사위원 선정 특별예술가상을 받았다.

이 상은 창작활동을 통해 미술계, 나아가 예술계 발전에 기여한 작가에게 주어진다. 이애리는 오랫동안 대학 강단에서 후배를 양성하며 창작활동을 병행해 왔다. 지금은 협성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연세대 숙명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전시회도 부지런히 열었다. 연간 2회는 꼭 여니, 창작열이 상당하다. 내년에는 미국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시상 주체가 미술단체가 아니라 예술가 단체다. 화가의 길을 가는데, 어떤 자극제로 작용할 것 같은가.
“화가로서 자긍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예술가로서 책임감과 사회적 소명의식이 좀 더 커질 듯하다.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화가 음악가 무용가 등 국내 예술 전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화단을 넘어서 음악계 미술계 무용계 사진계 인사들과 교류의 폭이 넓어져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식이 확대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개인전은 몇 차례 가졌고, 반응은 어땠나.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개인전을 37회 열었다. 폭발적 반응은 아니지만 은근한 관심을 끌었다. 개인은 물론 청와대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영동세브란스병원 세종호텔 과천시청 의왕시청 현대예술관 취옹예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서도 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해외 전시회는 어디에서 열렸나.
“일본 중국 베트남 등 동북아 지역에서 가졌다.”

-반응이 궁금하다. 국내 반응과 엇비슷하던가.
“상당한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더라. 역시 미술언어는 만국 공용어란 사실을 실감했다. 물론 문화의 차이로 인해 생긴 호기심이, 호기심 그 자체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과 그림을 통해 정서를 교유하고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내년 미국에서 열릴 초대전에 흔쾌히 응하게 됐다.”

중국과 일본, 베트남은 사실 한자문화권이다. 설령 문화가 다르더라도 동질감이 정서 밑바닥에 깔려있다. 이질감과 동질감이 공존하니, 아무래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듯하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문화와 워낙 달라 정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보인다. 헌데 이애리는 이런 점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눈치다. 도전정신과 패기가 넘친다. 오히려 탐색과 실험의 장으로 여긴다.

“그 점이 나도 무척 궁금하다. 미국에서도 동북아 지역에서처럼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는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미술언어가 보편성을 지녔고, 한국적 독창성이 살아 꿈틀대면 문화가 우리와 다를지라도 관심을 보일 것 같다. 우선은 도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학습효과를 얻지 않는가. 두려움이 앞서 진화할 기회를 잃으면 그건 작가정신에 어긋난다.”

-그동안 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첫 번째 개인전이다. 1996년 서울 인사동 삼정아트스페이스에서 열었는데, 전시회 오픈 이틀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한 상태로 전시가 시작했다. 그나마 많이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첫 전시회치곤 반응이 괜찮았다.”

-전시회를 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기지 않나.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을 법하다.
“1회 개인전에서 내 팬이 생겼다. 몸이 좀 불편한 대학생이 나무를 거칠게 형상화해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리움>이란 제목이 달린 4호짜리 작품 앞에 한참 서있더니, 종이에 연필로 ‘정말 마음에 드는데 얼마인가요’라고 써서 보여주더라. 나는 얼마에 팔아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20만원이라 적어 보여줬더니, ‘몇 달 할부로 지불하면 안되느냐’고 해서 ‘알았다’ 하고 작품을 흔쾌히 내줬다. 그런데 정말로 몇 달 동안 꼬박꼬박 돈을 보내왔다. 내 그림이 누군가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는 사실에 나는 전율했다. 지금 그 청년은 인사동에서 작은 화랑의 관장님이 됐다.”

이애리는 <또 다른 자연> 연작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10년 넘도록 그가 천착해온 주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삶의 자유와 유‧무형 굴레로부터 인간 해방, 우주와의 합일 등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와 욕망을 통해 또 다른 나, 또 다른 삶, 또 다른 세계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행복이 충일하고, 환희가 넘치는 영원불멸의 참된 세계, 즉 피안의세계는 현상 저 너머에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떠오른다. 하지만 표현기법은 ‘자연’이란 동양적 은유의 미학을 택하고 있다.

-그런 작품세계에 대해 화랑주나 미술평론가들 반응은 어떤가.
“글쎄…. 내 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중간 정도 아닐까 싶다. 아직 나는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서지 않았으니까. 다만 미술 관계자들은 내 작품세계에 대해 꽤나 호감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더욱 다양한 표현기법을 시도하고, 더욱 다양한 질료를 동원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컬렉터들이 작품세계를 어려워하지는 않나.
“고객이 꾸준히 연결되고 있다. 10년간 이어진 단골 지인도 생겼다. 이제는 그분의 가족 모두와 친분이 생겼다. 내 작품을 워낙 많이 소장해 나중에 함께 전시회를 열어도 될 것 같다(웃음). 내 작품을 몇 점 이상 소장한 분들은 한결같이 ‘내 그림이 순수하고, 느낌이 깔끔하다’고 평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우리 시대에 여성이 화가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다.
“맞다. 나도 엄마, 아내, 교수, 화가 등 1인4역을 해내고 있다.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 하는 일이라 힘들어도 행복하다. 특히 딸에게 존경받고, 제자를 길러내 보람차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선택받은 삶이 아닌가.”

-우리 시대의 화가는 어떤 사회적 위상을 지녔다고 보나.
“유럽은 화가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높다. 반면에 한국에선 이른바 잘 나가는 작가만 대우 받고 살아간다. 문제는 인기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림은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청량제다.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제공한다. 심미안도 은근히 키워준다. 그런 그림을 창조하는 화가가 생활고에 찌들고 사회적 예우를 못 받으면 그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을 안식처 하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왜 화가의 길로 들어섰나.
“그저 좋아서 시작했다. 지금도 그 마음에 번함이 없어 붓을 놓지 않고 있다. 화가는 나의 운명인가 보다. 숙명이라면, 애써 피하지 않고 즐기려 한다.”

-대학 강단에도 서고 있다. 예술가의 삶과 교육자의 길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가르치는 일과 내 작품세계를 견지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다. 헌데 좋아서 시작한 그림을 계속하다 보니, 가르치는 기회가 자연스레 생기고, 가르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더라. 내가 느끼고 알고 있는 걸 알려주면 학생들이 무척 기뻐한다. 나는 뿌듯함 속에 행복감에 젖어들고 보람에 사로잡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 이 길도 내가 걸어가야 할 천직’이란 확신이 찾아든다.”

-어떤 교육자가 되고 싶은가.
“나는 개인의 특성과 꿈을 키워주는 따뜻한 카리스마를 지닌 교육자이고 싶다. 요즘 학생들은 편하게 얘기를 주고받는 이모 같은, 엄마 같은 스승을 좋아하고 따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의 철학을 견지하며 일을 즐기는 사람이란 얘기가 있다. 화가이자 교수인 이애리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유쾌함을 내비쳤다. 포장된 유쾌함은 분명 아니었다. 자신의 일을 진정 사랑하는 이들만이 갖는 순수한 적극성이 넘쳤다. 아름다운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이다.

-Who Is…
선화예고 졸업
숙명여대 미술대학 한국화 전공
숙명여대 미술학 박사(Ph. D.)
대한민국 회화대전, 나혜석미술대전, 세계창작공모대전 등 심사위원
협성대 겸임교수, 숙명여대, 연세대 출강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