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네거리에 허옇멀건 허벅지의 여인네들 듬성 듬성, 커피잔 들고 서성거리며 수다를 떨 때 봄이 오는 재잘거림으로 알았습니다. 한강 고수부지 꽃밭에 할매꽃. 제비꽃 키재기 할 때 봄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당 뒷마당 하얀 목련. 연분홍 진달래꽃. 노랑 개나리꽃 살랑거릴 때 정녕 봄의 가운데 서 있음을 알았습니다.

라이락 향기. 아카시아꽃 내음 발길을 어지럽힐 때 봄에 취했습니다. 빨강 넝쿨 장미 고목을 에워쌀 때 봄의 정염에 불이 붙었습니다. 윤중로 벚꽃인파 들끓을 때 화목을 꿈꿨습니다. 개나리꽃 진 뒤 잎새가 무성하고 목련꽃잎 나딩굴 때 봄날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동작동 갯마을의 봄에 파묻혔습니다. “나/ 찾아 가/ 텃밭에/ 흙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 (김용택 ‘봄날’)

초록의 나무 그늘 길게 늘어 뜨리고 뻐꾸기 울어 앨 때 여름이 다가옴을 알았고 감꽃이 떨어지고 담장에 찔레꽃 필 때 여름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딩 뒷켠 그늘지고 나무숲 그늘 찾으면서 무더위가 지겨웠습니다. 남해관광여객선 타고 짠내음 맡으며 외도 꽃길을 거닐면서 얄궂은 사랑의 감정이 솟아났습니다. 잊으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틈틈이 학생들과 어우러져 칼럼쓰기를 강의하며 매미예찬도 피서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통영 앞바다서 충무공의 기개를 생각하고 지혜의 구릉지에서 빗줄기를 만났을 때 서울에서 급거, 상경을 부름 받았습니다.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폭염 속에 신문과의 씨름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기나긴 세월만에 다시 잡은 신문은 활력이었으며 기쁨이었습니다. 모멸감을 느끼는 인간적 교류도 없지않았지만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인생 나침반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잘 못 그려진 지도였나 봅니다.

후덕한 접시꽃 피고 분꽃 내음 은은히 번질 즈음 코스모스가 바람결에 하늘 하늘 손짓하고 들판에 황금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나뭇잎이 검붉고 노랗게 짙어 질 무렵 노랑 국화꽃이 피었습니다. 어느 듯 가을인가 싶었습니다. 앞마당에는 감이 주렁주렁, 얕은 산등성이에는 밤이 토실토실 옛 생각이 났습니다.

청담동 네거리의 여인네들 갈색 바지로 우유빛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잿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잿빛 속에도 옅은 무지개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소슬바람 서너차례 휘몰아치더니 나뭇잎은 온통 날아가 버리고 우울. 근심. 걱정도 하나씩 날아가 버렸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읊조리며 G선상의 아리아나 풀벌레의 구슬픈 곡조에도 젖어 보려고 폼을 잡아봤지만 걷어치우고 알량한 회사를 퇴사, 모처럼의 신문추억도 잊으려고 했습니다. 몸이 가뿐하고 마음도 개운하고 홀가분해 졌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 한 켠에는 집안 걱정이 돋아 났습니다.

그 찰나 새로운 신문의 추억이 생겨났습니다. 창경궁의 만추를 되뇌이며 신접살이 하듯 시작했습니다. 종묘 높은 담을 끼고 가생이 길 거닐며 정신을 가다듬어 안정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 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김용택 ‘가을이 가는구나’)

갑자기 손끝을 불며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옷깃을 여미며 목은 거북이 놀라 고개 파묻듯 움추러 들었습니다. 김장독이 터질 듯 맹추위가 엄습합니다. 출근길도 꽁꽁 얼어 버렸습니다. 미끄러져 넉장거리라도 하면 큰 일 납니다. 색시 걸음으로 조심해야죠. 이 모든 추억 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얀 눈이 내립니다. 스모그 눈이라도 좋습니다. 하얀 눈만 내려 주세요. 눈이 쌓여 갑니다. 한 해가 눈 속에 묻힙니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김 지 용 (논설실장. 시인)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