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화랑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은 기생 천관녀에게 빠진 김유신에게 진노하였다. 어머니에게 잘못을 빌고 굳은 결심을 한 김유신은 어느날 말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말은 주인 김유신이 늘 가던 천관녀의 집으로 갔던 것이다. 말에서 졸고 있던 김유신은 천관녀의 집 대문을 보고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결심을 흐리게 했다 하여 칼을 뽑아 자신이 아끼는 말의 목을 단숨에 내리쳤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이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측근이라도 가차없이 제거하는 권력의 공정성과 과단성을 보인 결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말(馬)을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에 담긴 뜻이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촉나라의 제갈량이 사랑하는 부하 마속이 군령을 어기자 군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즉 원칙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말은 주인을 섬기는 충직하고 온순한 동물이다.

어릴적 개구쟁이 시절 말을 상대로 장난 치던 기억이 난다. 말에게 “콩 삶아 줄게, ㅇㅇ쳐라” 하며 놀리면 눈망울만 껌벅이던 말이 금새 심벌을 보여주던 생각이 난다. 겨울이면 뒷발에 차일까 겁내면서도 살금살금 말 뒤로 가까이 다가가 말총(말꼬리털)을 몇 개 뽑아다가 올가미를 만들어 장독대 뒷켠의 대나무 숲 사이에 덧을 늘어 놓았다. 아침에 올가미에 걸려있는 참새를 수습하여 짚불에 구워 먹던 추억이 생생하다.

말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 두 다리를 쳐들고 웃으며 괴성을 지르는 모습은 무섭고 겁도 나지만 신기하고 품위가 있어 정이 가기도 하였다. 청동기 시대 마형대구로 널리 사용되었고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와 신라 천마총의 신마도에도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은 오래 전부터 농사일에도 사용되어 사람과는 퍽으나 친숙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날새고 용맹스러워 전쟁 때는 훌륭한 병기로서 역할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여에 있는 백제 최후의 영웅인 계백 장군의 동상이나 프랑스의 잔다르크나 나폴레옹도 말을 탄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진취적이고 활달한 기상을 뜻하는 것이다.

내년은 갑오년 청말 띠의 해이다. 운명학상으로 구분할 때 청마. 백마. 흑마. 황마. 적마로 구분한다. 특히 적마는 적토마를 떠올리게 하는데 적토마는 중국 후한의 여포(呂布)가 탔다고 전해지는 명마로 여포에 이어 관우가 탔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좋은 말을 일러 적토마라 하여 매우 빠른 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말은 상서로운 동물로 호랑이처럼 위엄이 있고 용맹스러워 제왕의 덕을 지녔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여성이 백말 띠의 경우 팔자가 드세다고 기피하는 현상은 여성이 사회성이 뛰어난데서 나온 말이고 백마는 왕처럼 귀하다는 의미를 지니고도 있다.

특히 청마는 시인 유치환의 호로 잘 알려져 있다. 청마 유치환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통영여고 국어교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청마는 그 곳에서 운명적인 사랑, 동료교사 정운 이영도를 만난다. 20대 중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는 이영도를 보자 첫눈에 반하여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연서를 보냈다. 그후 3년만에 드디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그야말로 플라토닉한 사랑이 시작됐으나 기혼자인 청마와의 사랑은 유교적 관습에 묶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1967년 청마 유치환의 죽음 이후 시조시인 이영도가 그동안 받았던 연서들을 모아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서간집을 발표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청마의 해를 맞아 두 시인의 애틋한 사랑을 음미해 보며 순종적이면서도 용맹의 상징인 말과 같이 힘차게 달려 나아가는 진취적 기상으로 국운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김지용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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