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출지역 편중현상과 단선적 수익구조 '선결과제'

60~70년대 중동 진출로 국내 건설경기는 물론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했던 해외건설이 IMF(외환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다 2~3년 전부터 호황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해외 진출 과정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고, 정부의 뒷받침이 미비한 형편이어서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업체를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을 만나 ‘해외건설 무엇이 문제인가’를 짚어보고, 대응방안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 주



해외건설 ‘호황’, 3~4년 후가 문제다
진출지역 일부에 국한---수익구조 단선적

최근 우리 건설사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올 들어 사상 최대의 해외건설 수주가 예상된다. 하지만 진출지역이 일부에 국한돼 있고 수익구조도 단선적이어서 이 같은 호황이 오래 지속되긴 힘들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건설 총 수주액은 112억불로 작년 같은 기간 64억불에 비해 무려 75%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 수주 164억불을 돌파한데 이어 금년엔 200억불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건설 진출은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끝없이 추락해 왔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10년 전인 지난 1997년 140억불을 기록했던 해외건설 수주액이 1998년 40억불로 추락한 뒤 지난 2004년까지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후 세계경제의 호황, 특히 중동건설의 특수에 힘입어 다시 해외건설 진출이 활발해 졌다.

전문가들은 건설업체들이 더 이상 국내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해외건설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한다.
건설산업연구원 김민영 연구위원은 "국내 건설경기가 성숙기 혹은 침체기에 진입하면서 국내에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대규모 건설개발기회가 줄어들게 된다"며 "때문에 해외건설 진출은 더 이상 국내수익 보전차원이 아닌 필수사업"이라고 밝혔다. <본보 5월 21일자 2면>

▲중동 플랜트 사업 집중 구조, 다변화 필요

하지만 건설업체들의 수주 구조를 살펴보면 최근 시작된 이 같은 해외건설 수주 호황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해외건설 붐은 중동 건설 붐과 맞물려 있다. 원유가격이 최근 몇 년 사이 고공행진을 기록하면서 두바이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을 중심으로 개발사업이 한창이고 그 혜택을 우리 기업들이 톡톡히 보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전체 해외건설 수주에서 중동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에 6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의 글로벌 건설업체들이 중동시장은 물론 서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에 골고루 진출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우리 건설업체들이 지나치게 중동시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또 중동시장 비중이 높다보니 자연스럽게 석유화학 관련 플랜트 건설비중이 높다. 현재 플랜트 수주 규모가 전체 수주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이 역시 세계 건설시장이 토목과 건축, 플랜트가 각 각 30%씩 골고루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더욱 위험한 일은 경제 사이클로 봤을 때 중동 지역의 건설 붐도 때가되면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3~4년 뒤 중동시장, 그리고 플랜트 건설시장에 한계가 올 것으로 점치고 있다.
쌍용건설 해외사업부 김준헌 부장은 "현재 중동 플랜트 시장이 사상 초유의 호황을 보이고 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향후 3~4년 뒤엔 신규 플랜트 건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대신 기존 시설의 유지, 보수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기업들이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MF 이후 해외건설 전문인력 크게 줄어

또 해외건설을 담당을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우리 건설업체 해외진출의 장기호황을 가로막고 있다. IMF 이후 10년간 해외건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 정도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은 국내발 경제위기로 해외시장 진출을 접거나 대폭 축소했다. 그 결과 지난 70년대부터 꾸준히 해외시장에서 기술과 경력을 쌓아왔던 고급인력들이 회사를 떠났을 뿐 아니라, 신규 인력의 양성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쌍용건설 김준헌 부장은 "쌍용건설의 경우 금년을 해외건설 명가 부활의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며 "최근 과거 회사를 떠났던 인력을 다시 불러 재임용시켰을 정도"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외건설의 특징상 우리 업체들이 진출한 상당수 국가가 후진국이거나 상대적으로 사회기반시설에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여서 고급인력들이 해외로 발령받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에 신규 인력 양성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주택업체 해외진출 준비부족 실패 요인

특히 국내시장의 위축 때문에 중견 주택업체들이 장기적인 안목보단 단기수익만 보고 무턱대고 해외에 진출하는 경향도 문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중국을 들 수 있는데 2000년대 들어 중국이 세계경제의 핵으로 부상하면서 중견 건설업체들이 대거 중국 주택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중국 주택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부족, 그리고 투자는 쉬운 반면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시장 여건 등으로 대부분의 진출기업들이 사업추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밖에 신흥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베트남이나 카자흐스탄 등의 경우도 진출과 동시에 높은 수익률을 보장 받았던 10년 전과는 시장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란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게다가 일부 해외시장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교민들을 통한 알박이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업체들이 사업추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개발계획이 현지에 알려지자 말자 교민들을 중심으로 ‘알박기’가 들어온다"며 "현재도 모 지역에서 주변시세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을 부르는 등 개발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해외건설 진출을 단순히 국내시장의 위축에 따른 단순 수익보전처 정도로만 이해하면서 시장조사나 현지화 작업 등 충분한 준비작업 없이 사업에 뛰어들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민영 연구위원은 "해외 주택개발의 경우 국내에서 겪을 수 있는 시장의 위험성 뿐 아니라, 국가적 위험성까지 겹친다"며 "중견업체들의 해외진출은 자본투자까지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 해당업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직시했다.

▲경제협력기금 이용한 정부 지원 시급

이 뿐 아니라, 우리정부의 지원이 다분히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데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까지 해외건설 관련 우리정부의 지원은 고작해야 대통령이나 고위관료들이 해당 국가들을 방문해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정도였다.

건설업계는 보다 실질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EDCF, 우리말로 경제협력기금의 활용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경제협력기금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도로와 항만 등 기간시설 건설을 지원하고 그 건설에 자국의 업체들이 진출토록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올해 경제협력기금에 작년의 2배 수준인 7200억원을 투입키로 하는 등 최근 들어 경제협력기금을 통한 업체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10~15%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며, 지원대상 국가도 너무 분산돼 있어 그 효과에 문제점이 제기 되고 있다.
김민영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6배에서 10배까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일본 건설업체가 진출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집중해 지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해외투자펀드조성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말만 무성할 뿐 아직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전무한 실정이다.
결국 시장과 수익구조의 다변화, 그리고 전문인력 양성과 정부지원 확대 등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해외건설 호황이 언제 위기가 돼 돌아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해외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업계의 노력과 함께 해외건설 수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 없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현실에 맞는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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