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지분 매각·계열사 통폐합 등 ‘꼼수’

[일간투데이 조창용 기자]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 시행을 20여일 앞두고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간 재벌그룹 핵심 계열사가 20곳에 이르고 있다. 총수 지분을 매각하거나 계열사 통폐합으로 내부거래 규모를 줄이는 등의 ‘꼼수’가 동원됐다.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업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총수 일가에 부(富)가 편법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렵게 도입된 규제가 시행도 한번 못해보고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지난해 10월 이후 20개 재벌 계열사가 합병이나 총수 일가족 지분 감소 등의 방법으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45.69%)로 있던 삼성SNS를 삼성SDS와 합병시켰다. 삼성SNS는 2012년 기준으로 내부거래 규모가 전체 매출액의 55.62%인 2834억원으로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회사로 지목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가족이 46.04% 지분을 보유한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12월 내부거래가 거의 없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인수하고, 내부거래가 많은 식자재사업을 떼어내 삼성웰스토리로 넘겼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내부거래 비율을 대폭 낮춘 것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친척이 대주주로 있던 STS로지스틱스와 승산레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족이 대주주인 티시스와 티알엠 등은 계열사 합병을 통해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의 친족이 대주주로 있는 서울도시산업, 윤석민 태영그룹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태영매니지먼트도 개정안 입법예고 직후 계열사 간 합병으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STX건설과 포스텍은 감자와 유상증자로 대주주이던 강덕수 STX그룹 회장 가족의 보유 지분이 2% 미만으로 낮아졌고, 세아네트웍스는 이태성 세아홀딩스 상무 일가족이 지분 25.23% 전량을 세아홀딩스에 매각해 규제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한라아이앤씨는 대주주이던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지분을 모두 계열사에 넘겼고 이수영 OCI그룹 회장 일가족은 쿼츠테크 지분을 20.79%에서 15.44%로 낮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일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동부씨엔아이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동부메탈과 동부하이텍 지분을 매각할 예정이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일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동양레저는 그룹 전체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돼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엠코는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하면서 규제 대상에서 빠졌고,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 일가는 시스템통합(SI) 업체 디케이유엔씨의 지분 전량을 지난해 11월 매각했다. 이로써 122곳으로 전망됐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 가운데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핵심 계열사 20곳은 규제가 불가능해졌다. 나머지 100여개 기업들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조만간 총수 지분 축소 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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