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지용 기자]

어렸을 적에 금강가에서 흰고니 한 마리가 덫에 걸려 푸드득 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흰고니가 백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백조는 흰색이지만 목에서 얼굴까지는 오렌지색이다. 천연기념물 제201호로 지정된 새로 해안과 호수 등에 주로 산다.

발레로 유명한 ‘백조의 호수’는 볼쇼이 극장의 관리인 베기체프가 쓴 발레 대본에 차이코프스키가 작곡을 한 것으로 최고의 기술을 요한다. 그 줄거리는 성년식 무도회에서 배필을 정하기로 한 독일의 조그만 나라 왕자 지크프리트가 성년식 전날 사냥을 나가 후수에서 백조를 쏠려고 할 때 왕녀 오데트가 나타나 이 백조들은 원래 사람이었으나 악마의 마술에 걸려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의 몸으로 되돌아 간다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후 왕자는 오데트를 사랑하게 되고 내일 있을 무도회에 초대한다.

동이 틀 무렵 아름다운 아가씨들은 백조가 되어 날아 간다. 악마의 꾐에 빠져 왕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 순간 왕자는 “언제든 당신을 위해 죽겠노라”고 외치자 진정한 사랑의 힘 때문에 마법이 풀리고 오데트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후부터 백조는 죽을 때가 되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백조의 노래’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다. 여름철 별자리 백조자리로 친구를 사랑한 키그누스(cygnus)는 친구의 죽음을 너무나 슬퍼하자 신들이 그를 백조로 만들어 준다. 이 백조는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숨졌다는 것이다.

밤에 연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 소야곡(小夜曲 ‧ Serenade)은 19세기 독일시인 루드비히 렐슈타프(Rellstab)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슈베르트가 작곡한 것이다. 백조는 평생을 울지않다가 죽을 때 단 한번 운다는 속설 때문에 보통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백조의 노래’라고도 부른다.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생의 마지막 여름에 작곡한 열네 곡의 가곡 가운데 이 노래가 담겨 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은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처녀’. ‘백조의 노래’가 3대 연가곡으로 유명하다.

“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도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의 연가곡 ‘백조의 노래’에 나온다. 연가곡(連歌曲 ‧ Song cycle)이란 특정한 목적으로 씌어진 일련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의 모음이다. 백조의 노래 첫 구절은 “이 밤의 어둠을 뚫고 날아가는 내 노래는 / 나직하게 그대에게 간청합니다”이다.

“간다 간다 정든 님 떠나간다” 1985년 11월, 서른세 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가수 김정호가 병상에서 마지막 취입한 노래 ‘님’의 첫 구절이다. 마치 촛불처럼 꺼져가는 자신의 운명을 노래로 옮긴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다. 이 앨범은 <못 다 부른 노래 김정호>라는 타이틀로 출반됐다.

지난해 김현식 유작앨범이 공개돼 팬들을 가슴 아프게 한 일이 있다. 23년 만에 빛을 본 김현식 미발표 앨범 <김현식 2013년 10월>의 타이틀곡 ‘그대 빈들에’는 김현식의 이 세상 마지막 육성이었다. ‘그대 빈들에’는 1990년 11월 김현식이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백제병원에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마지막 노래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울부짖듯 노래하는 김현식의 이 노래가 그의 백조의 노래가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이들의 여운이 채 가시지않은 시점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 지난 달 27일
가수 신해철(46)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1990년 발표한 노래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에서 이미 짧은 생애를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는 당부까지 했다.

발라드, 록, 테크노 등 대중가요의 모든 장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역량을 뽑낸 싱어 송 라이터이자 가요계의 천재였다. ‘가요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1990년대를 통틀어 신해철 만큼 대중성과 실험성을 고루 갖춘 뮤지션은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신해철은 서강대 재학 중이던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보컬로 데뷔했다. 이후 솔로 가수와 밴드 ‘넥스트’로 활동하며 90년대 록 음악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대에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날아라 병아리’ 등 히트곡을 남겼다. 지난 6월에는 6년여 만에 가수 활동을 재개해 솔로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그의 ‘백조의 노래’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신해철이 가요계에 족적을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와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김 지 용(편집이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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