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기자]
퍼거슨市, ‘不信의 벽’이 사태 키워
미국 전역 170곳 도시로 시위 확산

흑인 청년을 사살한 백인 경관을 불기소하며 불붙은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의 시위가 하루만인 25일(현지시간) 미국 내 170여개 도시로 확산됐다.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총에 맞아 사망했던 인구 2만 명의 소도시 퍼거슨에는 군 병력 2200여 명이 투입돼 군·경찰과 시위대의 밤샘 대치가 이어졌다. CNN은 뉴욕·워싱턴·로스앤젤레스·시애틀·마이애미 등 170곳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고 전했다.

흡사 전쟁를 방불케했던 24일 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흑인 소요 사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줬다. 경찰은 이날 하룻밤 새 12채의 건물이 불타고 82명의 시위대가 폭력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시위는 올해 8월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의 사망 이후 퍼거슨 시내에서 이뤄진 폭력사태 가운데 가장 심각했다.

뉴욕 맨해튼에선 수천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졌다. 당초 맨해튼의 유니온스퀘어 일대에서 수백명 규모로 시작된 시위는 밤이 깊어지며 숫자가 늘어 타임스 광장에 이어 맨해튼 다리를 지나는 대규모 행진으로 이어졌다. ‘살인자 경찰을 감옥에’라는 피켓을 들고 북과 트럼펫을 연주하는 시위대에 맨해튼 일대가 마비됐다. 시위대로 행진하던 그웬 타일러는 “경찰의 살인에 질렸다”고 말했다.

보스턴에서도 “경찰이 애를 죽였다”고 적힌 사진을 든 시위대 1000여 명이 거리로 나섰다. 로스앤젤레스의 시위대는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점거했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에 “죽이려면 구경꾼 말고 나를 죽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선 이틀째 폭동 사태가 계속됐다. 시위대는 주차됐던 자동차를 부수고 건물 유리창을 깨며 무법 상태가 반복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 “당국과 언론이 대배심 결과 발표 뒤 대규모 흑인 폭동사태가 날 것을 예견하고 대비해 온 것이 시위대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할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WP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사례로 규정하면서 “24일 밤의 폭력사태는 대규모 흥행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식의 전국적인 사용자 요청 프로그램(on-demand programming) 같았다”고 비유했다.

실제로 미 언론은 8월 브라운 사망 사건 이후 ‘다음엔 어떤 폭력사태가 나올까’ 식의 시나리오를 계속 보도해왔다.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는 17일 퍼거슨 시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찰과 주 방위군의 시위 진압능력을 늘려 사실상 대배심에서 브라운을 사살한 대런 윌슨 경관(28)이 불기소 결정을 받을 것이라고 ‘사전 예고’한 셈이 됐다.

인구 2만1000여명 중 65%가 흑인인 퍼거슨시는 애초부터 미국 흑백 인종 갈등의 압축판이었다는 점도 8월부터 진행된 소요사태가 극단으로 치닫는 근본적인 토대였다. 8월 이후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나서서 흑백 갈등을 치유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 사태로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