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하나·외환 조기통합 '부정적'…당사자간 대화가 우선
정 총리, 2.17 합의서 이행돼야…부당노동행위 파악 제재 '경고'
하나금융, 통합작업 "일방적 강행 아니다. 병행이다"
[일간투데이 문지현 기자] 정부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조기통합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밀어부치기식 통합강행이 헛발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홍원 국무총리가 2.17 합의서는 이행돼야 하며,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파악해 상응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수의 업계 전문가는 하나금융 쪽에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에다, 정부와의 공감대마저 없는 통합강행의 성공여부에 물음표를 던졌다.
◇ 하나금융 경영진 앞에선 대화, 뒤로는 통합강행에 박차
현재 통추위원장은 정광선 하나지주 이사회 의장, 통추단장은 이우공 하나지주 부사장(CFO)이 각각 맡고 있다.
통추위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전산(IT) 인력을 한 건물에 상주시키는 등 합병 승인과 별개로, 계좌이동제를 앞세워 내년 양 행의 IT시스템을 통합키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외환노조 측은 "입으로 대화 운운하며 뒤통수를 치는 격이다"며 "지주회장이 상견례를 무산시킨 데 이은 이러한 통합작업 강행은 지주와 은행 경영진이 과연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한다"고 밝혔다.
실제, 하나금융은 지난달 25일 'IT통합 TFT'를 신설했고, 지난 2일에는 두 은행 IT인력을 서울스퀘어로 이전했다. IT 통합을 위한 직원 이전은 당초 이달 5일과 19일, 두 차례로 나눠 이전키로 했다. 하지만 하나금융 측이 갑자기 12월5일 모두 이전하는 것으로 말을 바꿨고, 이사 직전 또 다시 12월2일로 번복했다. 사무실정리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한 직원들은 현재 심한 먼지와 분진, 악취로 방진마스크를 쓴 채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금융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을 서두르면서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뒷전이 된 것이다. IT통합 업무 공간에는 앞으로도 1500명까지 직원이 늘어날 예정이어서 문제는 커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새집증후군이 있다고 해서 입주를 미룰 순 없는 것 아니냐"며 "초기에 냄새가 있었던 것은 사실지만, 매일 밤 진공청소 그리고 별도 스팀청소를 통해 현재 근무환경에는 무리가 없다"고 해명했다.
외환노조 관계자는 "IT통합은 2.17 합의서에 대한 명백한 위반행위다"며 "2.17 합의서 어디에도 'IT통합'을 언급한 문구는 없으며, 2012년 11월8일 하나지주와 외환은행장이 직접 공문과 대직원 방송을 통해 지주사 차원의 IT통합이 없을 것임을 약속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 하나은행 시스템 기반 외환 흡수…계좌이동제 실익 없어 'IT통합, 헛돈 쓰는 격'
현재, 양 행의 IT통합은 작업의 범위와 양은 산정치 않고, 지주사 경영진의 사정에 따라 하나금융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완료일인 내년 10월12일을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무리한 일정에 맞춘 IT통합 작업으로 인해 이 기간 동안 전산변경이 필요한 일체의 신규상품과 업무개선은 사실상 중단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환노조 측의 설명이다.
외환노조 측은 "지주회장이 IT 통합의 이유로 내세우는 계좌이동제의 경우, 다른 모든 은행이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먼저 나서는 데 따른 실익이 없기 때문임을 금융권 관계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며 "세부사항 등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는 상황에서 계좌이동제를 IT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바뀐 얘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조는 "양측의 협상개시에도 불구하고 통합추진단 발족과 IT통합일정 강행, 합병승인신청 시도 등 일방적인 합병절차 강행이 계속되고 있다"며 "진정성있는 대화를 위해 '협상기간 중 합병절차 잠정중단'을 하나금융지주에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현재 통합과 관련된 실질적 대화는 중단된 상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달 27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열린 부점장협의회에서 외환은행 측 간부와 노조 간 몸싸움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 노조부위원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 2명이 병원에 입원했다. 사측 관리자로 구성된 '부점장협의회'가 비대위를 구성하겠다며 조합원을 반강제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외환노조가 막으면서 일어난 것이다.
외환노조는 이번 폭행 사건과 관련, 진상조사를 통해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의 징계와 사측의 공개사과를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지난 1일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번 폭행 시비가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만큼, 관계자 처벌이나 공개사과를 할 뜻은 없다"고 말했다.
◇ 정부, 정치권 한목소리 '2.17 합의서' 이행돼야…부당노동행위 확인시 제재
한편, 하나금융이 조기합병을 연내 추진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사건들이 파장을 불러오며 금융당국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가운데, 외환노조 측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 정의당 박원석·심상정 의원 등이 참여한 '하나금융지주·외환은행 조기합병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정확한 진상 규명에 나섰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나금융지주의 일방적 노사정 합의서 파기 및 외환은행의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단은 또, 사측이 조기합병을 반대하는 외환노조가 소집한 조합원 총회 개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 898명에게 징계를 시도한 점, 개별 직원들에게는 조기합병 동의서 작성을 강요한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외환은행이 노조원들의 임시대의원회의가 개최된 이후 본부장과 부·점장 등을 통해 직원들에게 "노조를 비난하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외환은행 측이 노조위원장을 비방하는 내용의 예시글까지 자세히 기재해 지시한 정황이 포착된다. 이와 함께 사측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기합병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동의서에 서명토록 강제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하나금융 조기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확인해보겠다"며 "고용노동부 확인결과,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되면 상응한 제재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어 "'2.17 합의서'는 이행돼야 한다"며 "통합문제가 이해 당사자간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도 "2.17 합의서에 명시된 외환은행의 5년 간 독립경영 보장은 정부가 노동조합과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이다"며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 하나금융이 불법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노사정이 함께 서명한 합의서를 휴지조각 취급해선 안된다"며 "김정태 회장은 경거망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부정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하나은행 관계자는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측 논리는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강제통합설은 사실과 다르며, 통합과정에서 미리 준비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병행작업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