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 가족을 만나고, 고향에 가볼 수 있을까-. 가슴 아픈 사람들이 이 땅에는 적잖다. 그 중 이산가족의 슬픔을 뉘에게 비하랴. 여느 사람들은 추석 설날이면 귀성길에 오르고, 고향이 안겨준 정을 듬뿍 안고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북녘에 고향을 둔 1000만 실향민들은 명절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의 망향가만 부를 뿐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 ‘꿈에 본 내 고향’ 같은 가요를 수백, 수천 번을 되뇌었을 것이다. 어디 노래뿐인가. 겨레의 아픔과 하나됨을 염원한 분단·통일문학은 그 얼마나 진한 아픔의 정서를 담고 있는가.

고향이란 무엇인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거기에 묻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함께 갖는 곳이다.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았던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강남에서 온 새는 남쪽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명절만 되면 그토록 끈질기게 고향을 찾는 이유는 뚜렷하다. 유년의 꿈이 어려 있는 산하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사리가 이렇다면 이산가족이 고향을 자유왕래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 일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소명일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분단의 통한을 안은 채 강산이 일곱 번 변한다는 70년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 남북한이 극한 대치 끝에 이산가족 상봉이란 ‘옥동자’를 낳았다. 남북은 그제 판문점 고위 당국자 접촉에서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은 내달 초에 갖기로 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한 타협의 성과물로 꼽힌다. 이번 상봉 추진은 지난해 2월 금강산 상봉 이후 1년 7개월 만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한시가 급하다. 이산가족으로 등록된 국내외 인사 12만9698명 중에서 올해 6월 말까지 세상을 떠난 사람은 6만3406명에 이른다.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생존자 중에서도 54.3%인 3만5997명이 80세가 넘는 고령이다. 매일 10명꼴로 숨지고 있다. 세월이 조금만 흘러도 사향(思鄕)의 통한을 가슴에 품은 채 저세상으로 떠날 분들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짧은 재회의 기쁨을 누린 이는 고작 3000명 정도다. 전체 상봉 희망자의 2.5%에 불과하다.

북한의 전향적 자세가 절실하다. 이번 남북 합의문에 ‘앞으로 상봉을 계속한다’는 문구가 들어 있는 만큼 상봉을 정례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극소수 인원이 명절 이벤트 식으로 만나는 일과성 행사로는 이산가족의 피 맺힌 응어리를 풀어줄 수 없다. 당장 생사 확인부터 시작하고 서신 교환과 화상 상봉의 길도 폭넓게 열어둬야 한다.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남북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함께 나서야 하는 천륜의 문제다.

이산가족의 고통이야말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가장 시급한 민족적 과제임을 북이 인식하고 성의를 보이길 바란다. ‘고향’은 민족의 공동 원형질이다. 남북 당국은 하루 속히 상봉행사 정례화·규모 확대 등을 통해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연로한 이들의 평생 한을 풀어줘야 한다. 평화통일의 디딤돌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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