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는 대하지 못할 통한(痛恨)의 현장. 인류사에 이 같은 비극이 또 있을까. ‘60여 년 오랜 기다림 끝에 총 6차례 12시간 만남’을 뒤로 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애통함을 그 어떤 슬픔에 비견할 수 있겠는가.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오늘 끝난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지난 20일부터 2박3일간 진행된 1회차 상봉에는 북측 96가족이 남측 가족 389명과 모두 6차례에 걸쳐 총 12시간 동안 꿈에 그리던 만남을 가졌다. 남측 방문단 90가족이 북측 가족 188명을 만나는 2회차 상봉은 24일부터 진행됐다.

이산가족면회소는 가족들의 한 맺힌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건강하게 살아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렇다. 이산가족들은 남북 분단이 남긴 혈육 간 생이별이라는 깊은 한을 안은 채 가슴 아픈 세월을 살아왔다. 살아생전 나고 자란 고향을 찾아 부모형제를 만나고 싶은 염원에서 눈물의 망향가만 불렀을 뿐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

■통한의 이산가족 상봉…자유왕래 시급

고향이란 무엇인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거기에 묻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함께 갖는 곳이다.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았던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강남에서 온 새는 남쪽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특히 자식을 기다리다 제대로 눈도 감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날 일이다.

조선후기 효종·현종 때 문인 김수항(金壽恒)은 작고한 모친에 대한 그리움을 저서 ‘문곡집 (文谷集)’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어머니 한 번 이별한 후 십년이 지나(一別慈顏十載更)/ 목소리와 얼굴 되새겨 봐도 분명치 않네(音容追憶未分明)/ 거친 무덤 서리 이슬에 슬픔 더하니(荒原霜露增悽愴)/ 숲 까마귀 효도하는 소리에 눈물 다하네(淚盡林烏反哺聲)”

명절만 되면 그토록 끈질기게 고향을 찾는 이유는 뚜렷하다. 유년의 꿈이 어려 있고, 속울음까지 다독여 주는 산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등으로 그 모습은 이지러졌지만 우리에겐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종착점인 것이다. 그렇다고 배타적·폐쇄적 지역이기는 결코 아니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또한 귀하듯, 내 삶의 뿌리는 이웃의 근원과 맞닿아 있음이다. 우리 모두 그물코처럼 따로 떼어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겠다. 사리가 이렇다면 실향민의 고통은 나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이산가족이 고향을 자유왕래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 일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소명일 것이다.

■상봉 정례화로 평화통일 디딤돌 삼길

실향민들은 노란 리본, 곧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실향민들의 가장 큰 아픔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가족의 생사를 모르거나, 고향에 못 가는 설움이라고 말한다. 혈육에 대한 끈끈한 본능을 ‘민족적 유전(Racial lnheritance)’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이자 인권 문제다. 현재 상봉을 기다리는 6만6000여명의 이산가족 중 70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은 6만여명. 매년 1000명씩 상봉한다고 해도 66년이 걸린다. 게다가 90세 이상은 5.6%, 80세 이상은 35%, 70세 이상은 36.6%를 차지한다. 4명 가운데 3명이 이미 일흔을 넘겨 매일 12명꼴로 숨지고 있다. 세월이 조금만 흘러도 사향(思鄕)의 통한을 가슴에 품은 채 저세상으로 떠날 분들이다.

이산가족의 고통이야말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가장 시급한 민족적 과제임을 북이 인식하고 이번 상봉행사 이후 더 큰 성의를 보이길 바란다. 하루 속히 상봉행사의 정례화·규모 확대 등을 통해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연로한 이들의 평생 한을 풀어줘야 한다. 평화통일의 디딤돌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산 1세대들이 아들·딸, 손자·손녀, 며느리·사위 손잡고 고향찾기 대이동에 나서야 한다. 더러는 경의·경원선, 경부·호남선 열차에 몸을 싣고 한 잔 소주에 ‘고향 무정’을 비감한 심정으로 읊조리기도 할 것이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둘러야 한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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