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민주주의인 지방자치의 위상 재정립이 시급하다. 1991년 지방의회, 1995년 단체장 직선제가 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도래했다. 민선 지방자치 20주년이 지났다. 우리 지방자치는 다수 단체장들의 위민행정 실천과 함께 지방의원들이 입법활동, 예산 심의, 행정사무 감사 등에 힘써 ‘동네일꾼’으로서 위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언제쯤 당당한 모습을 보일까하는 회의감이 들곤 한다. 성년(成年)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부도덕한 모습을 적잖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분노와 자괴의 동의어가 돼선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갖게 하고 있다. 특히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의 윤리도덕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음주운전과 거짓말, 부패 비리 연루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에게 지방행정의 정책과 예산 등을 맡기는 일은 주민에게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다. 주민의 안락함과 편의를 위해 일해야 할 지방의원이 오히려 주민의 원성을 사는 가치도치적 현실은 우리의 지방자치 현실을 개탄케 하고 있다.

■‘동네일꾼’ 위상 확보 못지않게 병폐 심각

예컨대 경기 모 시의회의 ‘막장 드라마’는 기초의원의 함량미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도박을 벌인 혐의(상습도박)로 시의원 7명과 전직 의원 등 8명이 불구속 됐다. 총 13명의 시의회에서 절반이 넘는 시의원이 법정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도박뿐만 아니라 의장단 자리다툼, 성매매 및 유사 성행위 의혹, 동료 시의원 신체 부위 촬영 등으로 도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반 소시민은 생각도 못할, ‘막장 드라마’ 같은 일들을 지방의원들이 버젓이 행하고 있으니 ‘지방의회 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동네일꾼으로 뽑은 시민 스스로 자괴(自愧)스럽다.

설상가상 지방일수록 공직자 부패지수가 높고 많은 예산들이 각종사업 집행이라는 명분으로 부풀려지는가 하면 잦은 설계 변경으로 불필요한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공직자들과 관급공사 수주업체들 간 뒷돈관행 및 각종 향응 그리고 나눠먹기식으로 혈세가 허비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단체장 친인척과 측근 공무원들의 부패상은 갈수록 내밀화·지능화되고 있다. 단체장은 공무원 승진과 인허가·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시장 측근과 친인척들은 각종 이권 사업은 물론 공무원 인사에까지 개입해 한 몫을 챙기는 행태가 적지 않은 현실이다. 단체장들의 화려한 ‘업적 홍보’ 외양의 뒤편에는 부패비리의 썩고 문드러진 냄새가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목민관은 인자·청렴·절약의 모범 보여야

21세기형 지방자치는 지역사회를 둘러싼 제반 환경변화에 능동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곧 저출산·고령화, 생산인구 감소 등과 같은 인구적 문제, 도시 밀집과 농촌과소의 공간적 문제 등은 지난 20년과는 다른 지방자치의 모습이 필요하다. 지난 20년 간에 기반한 미래 지방자치의 방향이 기존의 단체와 제도 중심의 지방자치에서 주민중심의 생활자치로 패러다임의 변화에 두어져야 함은 자명하다. 뚜렷한 치적이나 발전 없이 주민의 세 부담만 증가, 말이나 구호만 무성한 지방자치를 쇄신해야 하고, 주민과 지역을 위해 거듭나는 계기가 돼야 마땅하다.

지방관 곧 목민관(牧民官)은 백성을 다스려 기르는 벼슬아치라는 뜻이다. 특히 고을의 원이나 수령 등 외직 문관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훌륭한 목민관의 덕목에 대해 이렇게 제시했다. “목민을 잘하는 자는 반드시 인자해야 한다. 인자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게 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소하고 아껴 쓰니 절용이란 곧 목민관이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다.(善爲牧者 必慈 欲慈者 必廉 欲廉者 必約 節用者 牧之首務也)”

지자체의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공직자들은 국민 혈세를 아껴 써야겠다. “천지가 만물을 낳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고 쓰게 하였으니, 한 물건이라도 버림이 없게 한다면 재물을 잘 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이 들려주는 재물 절약의 철학이다.

이제 공직자들은 20여년에 걸쳐 경험한 바를 자양분 삼아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새롭고 알찬 설계를 하고 실천의지를 다질 때이다. 주민 참여로 만들어가는 생활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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