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가슴 아픈 사람들이 이 땅에는 적잖다. 그중 이산가족의 슬픔을 뉘에게 비하랴. 최근 모두들 추석 귀성길에 나섰고, 고향이 안겨준 정을 듬뿍 안고 돌아왔다.

하지만 북녘에 고향을 둔 1000만 실향민들은 명절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눈물의 망향가만 부를 뿐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 ‘꿈에 본 내 고향’ 가요를 수백, 수천 번을 되뇌었을 것이다. 어디 노래뿐인가. 겨레의 아픔과 하나됨을 염원한 분단·통일문학은 그 얼마나 진한 정서를 담고 있는가.

고향이란 무엇일까.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거기에 묻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함께 갖는 곳이다.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았던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강남에서 온 새는 남쪽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명절만 되면 그토록 끈질기게 고향을 찾는 이유는 뚜렷하다. 유년의 꿈이 어려 있고, 속울음까지 다독여 주는 산하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등으로 그 모습은 이지러졌지만 우리에겐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종착점인 것이다. 삶의 원의(原義)다.

실향민의 고통은 나의 아픔

그렇다고 배타적·폐쇄적 지역이기는 결코 아니다. 내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또한 귀하듯, 내 삶의 뿌리는 이웃의 근원과 맞닿아 있음이다. 우리 모두 그물코처럼 따로 떼어내 존재할 수 없는 자타불이(自他不二)라고 하겠다. 사리가 이렇다면 실향민의 고통은 나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이산가족이 고향을 자유왕래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 일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소명일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올 설날에도 이산가족들은 임진각에서 ‘재 이북 부조 합동경모제’를 지낼 것이다. 그 심정이 오죽할까. 참담함 그 자체일 터이다. 하지만 통일로변의 교통체증, 임진각 남단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들로 인한 복잡함도 ‘망배단의 차례는 올해로 끝나겠지’라는 소망이 있어 실향민들을 짜증스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란 리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이다. 실향민들은 여전히 이북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가장 큰 아픔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가족의 생사를 모르거나, 고향에 못 가는 설움이라고 말한다. 혈육에 대한 끈끈한 본능을 ‘민족적 유전(Racial lnheritance)’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이자 인권 문제다. 현재 상봉을 기다리는 7만여명의 이산가족 중 70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은 6만여명. 매년 1000명씩 상봉한다고 해도 60년이 걸린다. 게다가 90세 이상은 5.6%, 80세 이상은 35%, 70세 이상은 36.6%를 차지한다. 4명 가운데 3명이 이미 일흔을 넘겨 매일 10명꼴로 숨지고 있다. 세월이 조금만 흘러도 사향(思鄕)의 통한을 가슴에 품은 채 저세상으로 떠날 분들이다.

저 산 아래, 누가 살고 있는지

이런 현실에서 실향민들의 가슴을 더욱 저미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 발사를 예고,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고립화 심화와 이산가족의 한숨이 깊어지는 현실이다.

‘고향’은 민족의 공동 원형질이다. 남북 당국은 하루 속히 상봉행사 정례화·규모 확대 등을 통해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연로한 이들의 평생 한을 풀어줘야 한다. 평화통일의 디딤돌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산 1세대들이 아들·딸, 손자·손녀, 며느리·사위 손잡고 고향찾기 대이동에 나서야 한다. 더러는 경의·경원선 열차에 몸을 싣고 한 잔 소주에 ‘고향 무정’을 비감한 심정으로 읊조리기도 할 것이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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