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세상이 망가져 가고 있다. 내일이 두려워지는 나날의 연속이다. 고귀한 인간생명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가는 현실이다. ‘짐승들의 사회’로 가려는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범죄, 인면수심의 만행이 끊이질 않는다. 연쇄살인, 엽기적인 살해, 부모형제·자녀를 죽이는 패륜범죄 등 종말론적 범죄가 갈수록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수법은 어찌 그리 흉포한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주요 원인은 세상 곳곳에 만연된 ‘생명경시’ 풍조에 있다.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물질지상주의, ‘돈이면 다 된다’는 뒤틀린 사고방식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으는 물신주의다. 대안은 무엇일까. 지도층의 윤리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 생명경시 범죄가 날뛰는 음습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는 마음은 더욱 참담하다. 가습기 살균제로 무려 94명이 숨지고 1528명의 피해자가 접수된 가운데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책임 회피, 롯데마트의 법원 강제조정에 대한 이의신청, 서울대 연구팀의 실종된 연구윤리가 큰 비판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가해 기업을 대상으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엽기적 살인에 연구윤리 실종된 세태

이번 사건을 복기(復碁)해 보자.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임산부와 영유아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됐다. 94명의 사망자 가운데 옥시가 가장 많은 70명이나 됐다. 롯데마트가 16명, 버터플라이이펙트 14명, 홈플러스는 12명이다. 같은 해 옥시는 일이 커지자 아예 기존 법인을 없애고 새 법인을 세웠다. 2011년에는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사고를 일으킨 폐질환의 요인으로 보인다고 발표하자 옥시는 서울대 수의과대 등의 연구팀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연구보고서를 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교수들은 옥시 측에서 받은 정식 용역비(2억5200만원) 외에 수천만 원을 개인계좌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살인’을 초래한 부도덕한 가습기 살균제 상혼의 뒷배에 연구윤리가 실종된 대학교수들의 결탁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의사와 약사 등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이들은 인간애를 지녀야 한다. 생명외경의 보호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위대한 의사는 의료술을 충분히 익히고, 온 정성을 들여 의술을 펴야 하는 것이다. 의학을 공부하되 윤리도덕을 함께 익혀야 함이다. ‘동의보감’에 영향을 미친 ‘의학입문’은 책의 말미에 ‘습의규격(習醫規格)’을 두어 의학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의료의 본질은 학문으로서의 의학, 행위로서의 의술, 사랑 실천의 의도(醫道)라는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의술을 인술(仁術)’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논어’에서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 배경이다.

‘가습기 살균제’ 정부도 자유롭지 못해

부(富)를 쌓되 정당해야 함을 뒷받침하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손가락질을 당한다. 그러한 부는 오래 가지도 않는다. 직업윤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논어’에 공자의 직업관이 소개돼 있다. 공자는 “부를 구하는 데 있어 옳은 일이라면 나는 말채찍을 잡는 하찮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를 부정한 일로써 한다면 억만금을 번다해도 나는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다(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가습기 살균제를 둘러싼 총체적 부실 대응에서 정부의 책임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2001년 옥시가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해 제품을 출시했을 때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다. 수입 업체와 국내 제조사에도 제공된 MSDS는 산업안전 보건의 기본인데 이를 환경부가 못 봤거나 보고도 무시했다면 어이없는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검찰 수사 결과와는 별개로 정부의 부실대응 논란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관련 부처인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의 허가·관리·감독 과정을 낱낱이 감사하고 직무유기나 수뢰 등의 의혹이 드러날 경우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 그밖에 검찰이 관련 형사고발 사건을 3년 반 동안 사실상 방치한 이유도 밝혀야 한다. 이 모든 의혹들이 국회 청문회에서 규명돼야 할 것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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