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천하대세란 나누면 반드시 합해지고 합하면 반드시 나뉘는 법이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소설 ‘삼국지’의 맨 처음에 나온다. 역대 중국 왕조의 변화를 요약한 경구이다.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남북으로 나뉜 지 1945년 광복 이후 71년째이다. 햇수로도 오랠 뿐만 아니라, 이 급변하는 속도의 시대에 남북한이 겪은 정신적·심리적 고통과 기다림의 회한은 그 얼마일까. 정치·경제적 엄청난 손실과 세계를 향해 성장할 호기를 놓친 기회비용은 또 얼마인가. 남북한은 진실한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 이른바 진정성이 결여된 만남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진전이 없게 마련이다.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은 천 개의 산이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김정은 ‘셀프 대관식’…국제사회 일원 책임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개과천선하면 상대를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말과 행동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올 때 가능하다. 하지만 남북한 간 현실은 어떠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호전적 태도로 인해 긴장 수위는 높아져만 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또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3대 세습을 공고히 하고 있다. 공산왕조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기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새로운 국가직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를 열었다. 유일영도체제, 즉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른바 ‘셀프 대관식’으로 핵심 지위를 모두 장악한 김정은이 이젠 ‘외교’ 행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북제제를 돌파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노동당 위원장에 이어 국무위원장직까지 맡으며 친정체제 구축을 마무리한 김정은, 첫 공개 일정으로 쿠바 특사단을 만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최고지도자로서 김정은 자신이 직접 외교활동을 챙긴다, 정상적인 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그런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고립된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풀겠다는 의지의 속셈으로 이해된다.

물론 폐쇄를 벗고 개방·개혁을 추구함은 시대의 조류다. 그러나 북한은 본질을 바로 보아야 한다. 쿠바와 이란이 국제사회로 복귀한 데는 호전성을 버리는 ‘성의’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이들 국가는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게 됐다. 북한에 주는 메시지가 크다. 북한은 개방으로 미국과 수교, 국제사회로 복귀한 쿠바와 핵개발 포기를 대가로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는 이란을 본받아야 한다.

착잡한 현실인 ‘7·4 남북공동성명’ 44돌

이런 측면에서 남북관계를 보면 참으로 착잡하다. 오늘은 ‘7·4 남북공동성명’ 44주년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평화통일에의 희망을 부풀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현실은 ‘냉전 지속’이다. ‘7·4 공동성명’ 이후 ‘온탕·냉탕’을 오가다, 2008년 7월11일 북한 초병에 의한 남측 금강산 관광객 피살 이후 남북 대화 채널은 거의 끊겼다. 북한의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당장의 포화는 멈췄지만 ‘긴 휴전 상태’는 민족 역량의 소모를 초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손자병법’은 “병법에서 졸렬하게 싸우더라도 속히 끝맺는 게 좋다는 말은 들었어도, 교묘하게 싸우면서 오래 끄는 게 좋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무릇 전쟁을 오래 하는데도 나라에 이로웠던 예는 없다(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夫兵久而國利者 未之有也)”고 예견했나 보다.
답은 명료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행동하면 피폐해진 북 경제난 해소에도 도움이 될 터이다.

‘왕조적 3대 세습’까지 한 북한이 ‘우리식대로 산다’며 대화와 화해라는 세계 조류를 끝내 외면하면 필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을 보자. 지반이 무너져 기와가 깨지는 토붕와해(土崩瓦解) 형국이 아닌가. 주민이 곤궁한데도 지도자가 구휼하지 않고, 아래에서 원망이 있는데 위에서 이를 모르면 어느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게 돼 있다.

통일한국, 한민족의 세기를 맞이하기 위해선 민족역량을 모아야 한다. 민족 내부 갈등은 역진만 초래할 뿐이다. 민족 화해와 번영을 위한 ‘7·4 성명’의 실천이 아쉽다. 순서가 있다. 북한은 먼저 남북대화에 응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서 첫걸음을 떼야 한다. 우리 정부도 경직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려는 과감한 대북 접근과 역동적인 외교 노력이 요청된다. / 주필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