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오늘 사료(점심)는 뭘 먹었어?”
‘민중은 개·돼지’라는 망언을 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을 조롱하는 패러디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소시민 직장인 사이에선 상호 비하형 인사가 유행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선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우리는 개·돼지’라는 자조 섞인 댓글도 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한 대학생이 만든 ‘개·돼지 유니온’이라는 모임도 등장했다.


나 기획관의 발언은 엇나간 엘리트주의로 해석되고 있다. 과거 지배계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도 심어줬으나 요즘 ‘지배계급’은 민중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게 문제다. 1980년대만 해도 교육이 신분적 간극을 극복할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교육이 계급을 단절시키는 매커니즘의 일부가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신분제가 돼 버린 셈이다. 교육을 통해 기회의 균등을 제공해야 할 교육부 고위 공무원까지 “신분제를 공고화 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감정의 결정적 뇌관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계급 단절 시키는 교육의 역기능

나 전 기획관의 ‘소신’은 공직자 한 사람의 생각이기보다 지배계층의 생각일 수 있다. 엘리트주의는 지배·피지배의 개념을 깔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일 수밖에 없다. 민초(民草)의 가치를 몰각한 생각이다. 뿌리 없는 꽃과 열매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위로는 지시하는 임금이 있고, 중간에는 이를 받들어 다스리는 관리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따르는 백성이 있다. 관리들은 예물로 받은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고 창고에 쌓인 곡식으로 밥을 먹으니, 너희 봉록(俸祿)은 다 백성들의 살과 기름이다. 아래에 있는 백성을 학대하기 쉽지만 하늘은 속이기 어려운 것이다.(上有麾之 中有乘之 下有附之 幣帛衣之 倉廩食之 爾俸爾祿 民膏民脂 下民易虐 上蒼難欺)”

아버지인 당 고조 이연과 함께 중국 수나라를 세운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의 말이다. 비록 집권기엔 왕자의 난을 주도, 형제들을 척살하고 등극했지만 백성을 극진히 돌보는 애민정신을 발휘해 제왕들 중에서 성군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치도(治道)의 요체를 수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가 잘 보여주고 있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공직자들이 국민을 무시하는 언동을 일삼는 등 기강해이 현상이 심각하다. 나 정책관의 초대형 ‘설화(舌禍)’는 단적 사례일 뿐이다. 적잖은 공직자들이 국민을 섬기는 위민(爲民)이 아닌, 국민에게 해를 끼치는 ’해민(害民)‘의 몰골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말이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해 만든 소리 조합이다. 언어란 모든 유무형에 대해 개념을 정리하고, 대표적인 말의 조합으로 표현하기로 한 약속이다. 문제는 말이 진실을 잃어버릴 때 자신은 물론 남도 죽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개·돼지로 여기는 자조 풍토 경계

그래서 공자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달라, 말만으로는 그 사람의 진실을 알 수 없는 세태를 한탄하면서 “진정한 군자인가, 아니면 겉으로만 군자인척 하는 자인가.(論篤是與 君子者乎 色莊者乎)”라고 반문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쁜 말로써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惡利口之覆邦家者)’를 질타했다. 지도층 인사들은 옛 성인군자들이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爲天)”는 사마천의 저서 ‘사기’의 교훈을 실천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이 우매해서 공무원들에게 나랏일을 맡긴 것이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일하도록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국민을 깔본다면 더이상 공직에 있으면 안 된다. 더구나 교육부는 신분 등의 차별 없이 누구나 교육을 받도록 해 건강한 시민을 키워 내는 곳이다. 요즘 ‘수저계급론’이 나오는 등 부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교육의 균등한 기회 제공을 통해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놔 줘야 하는 교육부의 책무가 더 막중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교육부의 고위 인사가 ‘신분제 공고화’ 등과 같은 망언을 쏟아 낸 것은 한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다.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정치와 행정이 이뤄지는 민주주의의 정신마저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기회에 공직 적격 심사를 강화해 공직 부적격자들을 반드시 걸러 내야 한다. 물론 스스로 개·돼지라고 여기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의 가치는 하늘과 같다고 했잖은가.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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