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채용 35% 의무화 요구 '인력 질 저하' 우려
서비스·품질 수준 낮아도 "물품 사달라" 떼쓰기 횡행

▲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국혁신도시협의회가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채용 법제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진주시

[일간투데이 천동환 기자] 지역발전이라는 혁신도시의 본래 취지가 자칫 공공기관의 단순 지역화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요지로 자리잡아야 할 혁신도시가 큰 틀에서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자체들의 욕심 채우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혁신도시의 방향이 지역인재 채용이나 지역물품 구입 등 공공기관 옥죄기에서 벗어나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를 통한 지역 자생기능 확보 차원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참여정부는 지난 2003년 출범과 동시에 경제·인구의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키 위해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탄생한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지역 신성장동력 창출 기반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12월 전국 10개 혁신도시(부산·대구·광주전남·울산·강원·충남·충북·전북·경북·경남·제주)의 입지선정이 완료됐으며, 지난달 말 기준 총 154개 대상 기관 중 139개 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혁신도시는 1단계 계획인 공공기관 이전 및 정착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오는 2020년을 목표로 산학연 클러스터 형성에 돌입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혁신도시 안팎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지역발전이란 본래 취지가 공공기관의 과도한 지역화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공공기관 채용까지 좌지우지 하려는 '지자체'

지난 5일 전국혁신도시협의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채용 법제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 10개 혁신도시 지자체장들로 구성된 협의회는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률이 평균 13% 수준에 불과하다며, 지역의 미래를 위해 35% 채용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역인재 채용 확대의 필요성엔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35%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동훈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지역인재 채용을 늘리는 것은 좋다"면서도 "그 비율을 너무 높게 강제할 경우엔 우수인재 채용이란 효율성엔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공사는 국가 전체를 상대하는 건데, 지역인재 위주의 채용은 이상한 것"이라며 "인력의 질 저하도 우려 된다"고 강조했다.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관계자는 물론, 지자체 내부에서도 지역인재 채용을 일률적으로 의무화 하란 주장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원래도 기관 내부적으로 여성 또는 지방대 출신, 장애인 등을 일정 비율 이상 채용토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다"며 "기관이나 지역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연구기관의 경우 지역인재로 35%를 채우라는 것은 무리다"고 털어놨다.

또, 어느 지자체의 일자리 담당자는 "공공기관마다 인재를 채용하는 기준이 다 다른데 그것을 지자체에서 정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지역인재를 많이 뽑아달라고 요구할 순 있지만 반영은 공공기관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지자체들 중 일부는 해당 지역에서 실제 전문 인력의 충당이 가능한지 여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 지난 5월 17일 충북대에서 열린 충북 이전 공공기관과 12개 지역대학의 합동 채용설명회에 취업준비생들이 몰리며 만원을 이뤘다. 사진=뉴시스


◇ 지역 이기주의 버리고 '국가적 개념'으로 접근해야

이 밖에도 지자체들은 이전 공공기관들에게 지역물품 구입이나 사회공헌 활동 등에도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필요 자재 구입의 우선권이 지역 업체들에 있다 보니 기존 거래 업체들이 혁신도시에 분점을 열기도 했다"며 "그러자 지역 업체들이 이곳 저곳에 투서를 하는 등 한 때 난리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서비스 등 여러 측면에서 지역 업체들이 기존 거래 업체들을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기관 입장에선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고 강조했다.

한동욱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대외협력과장은 "지자체들이 공공기관에 주로 요구하는 사항은 동반이주를 많이 해달라는 것과 다양한 지역 활동, 지역물품 구입 등이다"며 "본연의 사업도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달라고 하는데, 시범사업을 지역에서 하는 정도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혁신도시가 본래 취지에 맞는 지역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철운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지자체들이 공공기관에 지역 물품을 사달라고 하는 것은 지역발전이란 차원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낮은 수준의 접근 방식이다"며 "공공기관들이 이전해 와서 세금을 더 내고, 물건 좀 사주는 것이 어떻게 지역발전이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혁신도시가 국가균형발전이란 본래 취지에 맞는 중추적 역할을 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의 정책적 의지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딸랑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만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한 관계자 역시 "공공기관 이전으로 혁신도시의 하드웨어 구축은 거의 완료됐다고 보는데, 산학연 클러스터 구축이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엔 진전이 없어 보인다"며 "국토부에선 추진단의 인력을 줄여나가는 등 정부의 관심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이하 추진단)은 혁신도시를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으며, 남은 단계인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란 입장을 밝혔다.

서정호 추진단 지원정책과장은 "단위 혁신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독자 자생과 수익창출이 쉽지 않다"며 "인접 지역과 기업을 연계해서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고 설명했다.

또, 박상운 추진단 투자유치지원과장은 "올해만 60개의 기업이 혁신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투자유치 설명회 및 박람회 등을 통해 각 혁신도시 관련 기업들의 입주를 촉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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