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에 ‘풍차 돌리기’가 있다. 상대편에 다리가 걸려 꼬이게 되면, 그 상대방이 우물 정井자로 도는 대로 따라 돌지 않을 수 없는 게 바로 풍차 돌리기다. 거기에 한 번 걸려들게 되면 여간해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난감한 처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꼭 그 풍차 돌리기에 걸려들어서 아직까지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4대 강국에 샌드위치처럼 끼워져서 제대로 운신을 못하고 눈치를 살펴가면서 겨우 겨우 연명하다가 허리가 잘린 채 지금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고려대의 유호열 교수는 지난 북핵문제를 놓고 남북한과 미­중­일­러 등 6개국의 이해득실을 평가한 바 있는데, 미국을 B+, 일본은 B, 중국은 A, 북한은 C, 한국은 C+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점수 주기는 누가 봐도 객관성이 인정될 만큼 수긍이 가는데, 중국(A)과 미국(B+), 일본(B)과 러시아(B)에 비하여 당사자인 한국(C+)과 북한(C)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있어서 이러다가는 인접국, 또는 강대국들의 풍차 돌리기에서 언제나 벗어나게 될지 난감한 감을 지울 수가 없다.

미·중국·러·일 4대 강국에 샌드위치

우리나라 경제가 잘 나가게 될 때 일본도 따라잡을 것이라고 하자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따라잡을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일본인에 비하면 책을 3분의 1권도 읽지 않는 게 한국의 독서현실이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무역역조현상은 여전하다. 일본을 따라잡기는커녕 2만 불에서 맴돌고 있는 현실이다.

신세호는 ‘삶과 독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동물은 자기 본능에 따라 살아가므로 동물에게는 현재만 있을 뿐, 과거와 미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달리,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을 제한 없이 자유로이 살아가고 있다. 그 같은 초현재적인 인간의 삶은 책 덕분이다. 책은 인간이 창안해 낸 수많은 도구 중에서 가장 위대한 도구이다. 다른 도구들은 모두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 신체의 부분적 확장일 뿐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은 눈의 확장이고, 농기구나 총은 손의 확장이며, 자동차나 비행기는 발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신체의 일부가 아닌, 기억과 상상의 확장이다. 기억과 상상의 확장인 책을 읽음으로써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월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적을 막기 위해서 팔만대장경이나 석굴암 대불을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 어깨 너머로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직시하고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그 지긋지긋한 풍차 돌리기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주독립국으로서의 통일된 나라가 영존하게 해야 할 것이다.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일본의 외상 가쓰라와 미국의 국방장관 테프트와의 밀약에서 미국의 필리핀 진출과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하기로 했었다. 그로 인해서 일본의 한반도 진출이 실현됐다. 1910년 8월29일 급기야 우리는 경술국치, 나라를 잃게 된다. 아니 민족혼마저 상실케 된다. 일제 식민지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遠因)이라 할 수 있다.

정쟁 접고 남북이 민족이익 챙겨야

그러니까 한반도 분단은 첫째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시작되었고, 둘째 미국 같은 강대국이 국제적으로 묵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런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역사를 돌아볼 때 풍차 돌리기에서 벗어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지혜로워야 한다. 민족의 이익을 더 생각해야 한다. 외세, 즉 6자회담도 외세에 의해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내부문제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여기서 냉철하게 우리의 국익이 뭐냐, 민족의 이익이 뭐냐를 생각하면서 남북 간에는 남북 당사자끼리 다뤄야 할 문제가 있다. 그리고 국제문제로 다뤄야 할 부분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강대국들에 끼인 채 그들이 돌아가는 대로 따라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인 데도 나라야 망하건 말건 개인이나 당파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축재하는 하이에나들에게는 그 사납고도 파렴치한 이빨에 철퇴를 가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서울디지털대 교수·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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