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천주교 두 종교 모두 외래종교이다. 그러면서도 두 종교는 한반도에 전래 이후 보편적 종교가 됐다. 불교는 1600년의 시간을 한민족과 함께함으로써 민족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인들은 18세기 후반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신앙하기 시작했다. 전래 이후 초기 박해 속에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에 의해 한국사회 주류종교로 자리매김 됐다. 향후 상당기간 우리사회를 이끌어 갈 것이다.

이들 종교가 한 시대를 넘어 오랜 시간 신앙될 수 있었던 배경은 한반도 내 많은 믿음을 배척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수용한 데 있다. 그리고 그 수용에는 뛰어난 종교지도자가 있었다. 불교는 원효, 의상 등 고승이 있었고 천주교는 노기남 대주교, 지학순 주교 등이 있었다. 그들을 받아들이며 함께했던 김수환 추기경은 포용하고 화해하는 마음이 있었다. 김 추기경은 천주교를 대표하는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천주교 밖 불교신도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성직자다. 일연은 그의 저서 삼국유사를 통해 선배, 동료 승려들은 물론 당시 백성들의 신앙을 올 곧게 소개하고 있었다. 김 추기경도 불교인 등 다종교인들과 동시대에 살면서 만남과 교류를 가졌다.

■일연과 김수환의 다원사상 ‘큰뜻’

일연스님의 현실인식과 역사관, 세계관을 살펴보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는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저술 동기에 대해선 그의 생애와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무인정권과 몽골침입의 혼란기를 살다간 고려후기 승려로 주로 산사에 은둔하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참선에 정진했다. 그러나 최씨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는 중앙의 정치무대에 뛰어들어 선종을 이끌며 왕정 복고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다 몽골에 항복한 이후 몽골 침략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보며 민족혼을 되살리기 위해 저술하게 된다. 1227년 승과에 응시해 장원급제했으나 세상의 명리를 쫓지 않고 비슬산 보당암에 들어가 수행을 한다.

이후 무주암에 들어가 ‘생계불감 불계불증(生界不滅 佛界不增), 현상적인 세계는 죽지 아니하고 본질적인 세계는 늘지 않는다’는 구절을 탐구한다. 그 속에 중국의 이상적 통치자 요순과 같은 시대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이 지배하는 나라였음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어 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권의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숨죽이며 느끼고 있던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운 것이다. 하늘사람(천신)이 다스리고 싶어 하던 나라, 공자가 살고 싶어 하던 동이에 우리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하고 싶어한 것이다. 그리고 삼국만 아니라 가야, 부여, 발해 등 우리 고대사 사료를 수록하고 있다.

그보다 100여년 앞선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일연스님보다 더 풍부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군을 비롯한 우리의 역사 찬란한 역사를 지우기 시작한다. 역사서로 빠트릴 수 없는 우리 고대사가 생략되거나 빠져있다.

■제사는 미신 아닌 報本追孝 정신

1962년 10월11일 개막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기존의 천주교가 가지고 있던 선교지에서 다른 문화와 부조화를 일신하는 대 변혁을 가져왔다. 고유문화를 존중하고, 단일 형식만을 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 미사 전례와 십자가를 향하는 미사가 아니라 신자들을 바라보는 형식으로 바뀌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교회의 큰 변화는 김 추기경에게도 새로운 물결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김수환 추기경의 다원주의 사상은 종교 다원주의를 통해 이해하고 있다. 김 추기경은 2000년 5월 23일 제13회 심산상(心山賞) 수상 강연에서 다음과 말했다.

“유교는 불교와 더불어 한국을 위시한 동북아시아 문화의 사상적, 정신적 바탕을 이뤄왔습니다. 저는 천주교의 성직자이지만 한국인이기에 제 몸 안에서도 어딘가 유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부모 은혜에 보답하고 사후에도 효를 실행하기 위한 보본추효(報本追孝)인 것입니다. 이를 인식한 천주교에서는 금지됐던 조상 제사를 1939년 허용했습니다.
동족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가 함께 손을 잡고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켜 갈 때 한국 민족은 환태평양 시대에 명실상부 ‘동방의 빛’으로 인류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게 될 것입니다.”

일연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종교화합을 넘어 인류평화를 위한 고귀한 메시지로 큰 깨침을 주고 있다.

<장정태 동국대 겸임교수·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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