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서양 정치의 발상지다. 아테네 시민은 이곳에 모여 연설을 듣고 토론을 하며,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정치뿐 아니라 재판과 철학 등도 대화로 했다. 웅변가는 물론이고 연설문 작가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기원전 4세기의 유명 정치가인 데모스테네스는 ‘모든 웅변가 중 군계일학’이라는 상찬을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에 패한 뒤 망명길에 올라 “만약 정치와 죽음 중 무엇을 택하겠는가 묻는다면 죽음을 택하겠다”며 ‘말’로 성공했던 정치 인생을 후회했다.

■정치에서 말의 진실성과 품격 실종

라디오와 TV가 별로 없던 시절 한국 정치에서도 웅변은 정치인의 주요 자질이었다. 청년 정치인 김대중(DJ)은 ‘동양웅변전문학원’을 직접 운영했다. 목포상업학교 때부터 웅변이라면 자신 있었던 DJ는 이 시기에 소리의 높낮이, 제스처, 원고 내용을 갈고 닦았다. ‘리틀 DJ’로 불렸던 김상현도 이 학원에서 DJ를 처음 만났다.

김상현은 웅변 실력으로 야간 고교 중퇴의 학력을 극복하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대 2학년 때 웅변대회 2등을 차지했던 김영삼(YS)은 ‘위대한’을 ‘이대한’으로 ‘경제’를 ‘갱제’로 발음해 많은 청중의 실소를 자아냈다. 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직설적인 한마디로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불을 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6년 일본을 방문해 당시 최대 현안이던 독도 문제를 질문 받았다. 그는 “전혀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다. 독도는 한국 땅이니 일본이 그걸 인정하면 된다”고 답해 질문한 일본 기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기획 비서관을 지낸 윤태영 씨가 ‘대통령의 말하기’를 펴냈다.

노 전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고은 시인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지탄한 바 있다.

요즘 정치는 웅변보다는 토론이 중요하고 말 못지않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에서는 말의 진실성이나 무게감은커녕 품격조차 찾기 힘들다.

■20대 국회 ‘동·식물 국회’ 우려 씻어야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첫날부터 파행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회사에서 “민정수석이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사드 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퇴장한 뒤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의사일정을 보이콧한 새누리당도 잘한 것은 없지만 ‘첫째도 중립 둘째도 중립’ 이어야 할 의장이 개회사부터 야권의 주장을 확성기에 대고 외친 듯한 일은 전례가 없다.

20대 국회는 정기국회를 열기도 전에 “닥치세요” “멍텅구리” 같은 막말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전운이 감돌고 있다. 개원한 지 석 달이 넘었지만 발의된 법만 1795건 중 통과는커녕 심의된 법안조차 없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역대 최저 법안 가결률(41.6%)을 기록했던 19대 국회 같은 ‘식물국회’가 재연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벌써부터 20대 국회가 식물국회에 동물국회까지 결합된 ‘동·식물 국회’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칭찬합시다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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