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송업계는 갈등 사안마다 당면토장(當面土墻), 즉 각자 담벼락에 대고 각자의 주장만을 반복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예컨대 방송업계는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 허용문제를 두고 십수 년째 대립하고 있다. 텔레비전수신료 인상, UHD방송 도입을 둘러싼 주파수 배분, 유료방송의 지상파 방송콘텐츠 이용료 등에서도 대립해 온 오기도 했다. 논의만이라도 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인가.

스마트폰 도입 이후 최근 5년 동안 사람들의 미디어 이용환경이 모바일로 급변했다. 더 이상 고정형 TV나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는 이용환경으로 옮겨간 것이다. ‘기-승-전-모바일’, 즉 마지막은 모두 모바일로 통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에 따라 지상파의 핵심 수입원인 광고가 지상파보다는 모바일에 집중되고 있다. 2016년 상반기 인터넷포털 ‘네이버’의 광고 매출이 지상파3사 광고의 2배에 달하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모바일 ‘신시대’에서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는 반면, 방송사업자들은 아직도 ‘구시대’에서 이전투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래상 놓고 방송제도 고민할 시점

다양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방송의 미래 또는 청사진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시점에 이르렀다. 미래의 방송제도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 1990년대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 위성DMB, 지상파 DMB, IPTV의 지속적 도입에 따른 방송산업의 외형적 성장에 비해, 방송관련 법제는 이들의 도입 시마다 ‘땜질식’으로 수정돼 왔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청·장년으로 성장한 방송산업이 입고 있는 방송법이라는 옷이 어린이옷에 덧대어 입은 누더기옷 같은 느낌을 준다. 즉 불완전한 형태이다.

방송법은 대한민국 방송과 통신, 그리고 다른 미디어들이 나아가야할 좌표와 방향, 즉 방송철학을 담아야 한다. 거대한 바다에서 항해하고 있는 방송사라는 배들이 가야할 방향을 안내해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이 무엇이고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여타의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은 어떠한 책무를 시청자에게 행해야 하는지를 담아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미래에 추구하고자 하는 방송과 통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철학이 담겨져야 한다.

시대에 맞는 방송철학을 기반으로 지켜야할 최소한의 공공의 영역은 더 규제를 구체화해야 한다. 나머지 규제는 최소화해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 또한 “동일 방송서비스, 동일 규제”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상파방송,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IPTV는 전송방식에만 차이를 보일뿐 동일한 방송서비스이다. 공정한 시장경쟁은 동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동일한 규제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모바일 중심 새 미디어시대 담아야

지상파방송에게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것이 시청자의 복지를 축소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방송사들은 현존하는 제도 하에서 광고 이외의 제작비 확보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텔레비전 수신료(KBS, EBS)와 콘텐츠 판매를 통해 일부를 충당하고 있기는 하다. 지상파방송은 주수입원인 광고에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좋은 품질의 방송콘텐츠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국내 방송산업은 빈곤의 악순환 속에 갇혀 있다. 재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지상파방송은 외주제작사에게 적정한 제작비를 지불하지 못하고, 열악한 재정상황에 있는 외주제작사는 중국자본(China Money)에 의존해 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수한 제작인력, 작가들이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다. 좋은 품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의 악화는 결과적으로 시청자 복지의 축소나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사안별로 장기간동안 당면토장하고 있는 방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서는 방송규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현재의 방송법은 1990년대 말 통합방송법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 중심의 새로운 미디어시대를 담아내고, 포화상태의 국내 미디어시장을 넘어 더 큰 우호적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미래로 정진하기 위해 거시적 논의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