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듯한 한 세기 전의 역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1905년 7월 29일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였던 미 육군장관 태프트 사이에 비밀협약이 맺어진 날이다.

그 당시에 러ㆍ일 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태프트는 필리핀 방문 전에 일본에 들려 가쓰라와 회담을 갖고 미국의 필리핀 권익과 일본의 대조선 권익을 상호 교환조건으로 조약을 승인했다. 즉 미국의 필리핀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묵인한 셈이다. 그동안 한반도 주변에는 4강(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이 여러 형태의 마수를 뻗어왔고, 이 나라는 찢기고 잘리며 931회나 요리를 당해온 게 역사적 사실이었는데, 요즈음 또다시 그러한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식민·분단 경험…집안싸움은 여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서 강제로 맺은 을사조약(1905년 11월)을 맺은 이후 그들은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서 군국주의 발톱을 내비치는가 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핵문제에 관여하면서 세력확대의 구실을 삼으려 하고 있다.

제2차대전이 종결되는 해에 미ㆍ소간에 맺어진 얄타협정(1945)은 미국이 소련으로 하여금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개입할 것을 종용하자 스탈린은 미국에게 일본과 체결한 평화조약을 폐기하고 선전포고를 하는 조건으로 조선의 38선 이북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의 무장해제권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소련의 한반도 진출로 분단이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나눠먹기 좋아하는 강대국들의 요리상에 놓여있는 형국이다. 자칫하면 불구덩이나 기름가마로 들어가 튀겨지고 잘려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남남끼리 싸우는 꼴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분단은 외세가 했지만, 그 원인은 날 새는 줄 모르던 집안싸움에 있다.

대한만국이라는 배가 구멍이 나서 샐 뿐 아니라 안개 쌓인 주변에 암초가 노려보고 있는데도 싸우고만 있다. 첫째 싸움닭은 국회의원들이요, 둘째 싸움닭은 배부른 귀족노조다. 두 싸움닭은 불구덩이나 기름가마로 언제 들어갈지도 모르는 판국인데도 여전히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다.

인간사회의 가장 행복한 상태는 인체의 기능으로 얘기할 수 있다. 인체는 신경계통과 사지백체가 신속하고도 원활한 수수작용이 이뤄지는 데에서 건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국가나 사회도 이와 흡사하다. 국가와 국민 사이에 신속한 반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은 종교와 교육, 문화, 언론 등이 자정능력을 잃을 때 그 병리현상은 심각하게 나타난다. 종교는 소금이 짠맛을 잃은 것처럼 되었고, 기능주의에 치중한 교육은 절름발이가 되었으며, 언론은 사시(斜視)로 공명정대하게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빼딱하고 공허하다. 국적불명의 문화예술은 벌거벗은 도깨비춤으로 타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분법적 주장 접고 국민화합을

지금 대한민국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천사가 불 지르기 직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메스를 가하기보다는 여러모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6ㆍ25 때 방공호에서 꽃씨를 따 모으시던 할머니처럼, 우리는 절망 가운데에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외침을 막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석굴암 대불을 조각한 우리의 조상들처럼, 진리가 담긴 책 속에서 슬기를 찾아야 한다. 강대국의 풍차 돌리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호랑이에게 열두 번을 물려가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특히 화합이 긴요하다. 사람 사는 데 다른 목소리가 없을 리야 없다. 하지만 정도가 있는 법. 매사 이분법적 극단만을 주장하니 쟁투의 쇳소리만 난무한다.극심한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 지역·계층·세대 간 분화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국민역량 결집에 기반한 통일 지향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듯 지연·학연까지 엮어진 전근대적 구조가 오늘의 현실을 초래한 근인이다. 배타와 지배욕을 낳았다.

공생공영의 이웃이 아니라 물리쳐야 할 적으로 보게 하는 사회에 공공선을 올곧게 세울 수 있는 공의(公義)의 정신은 설 땅이 없다. 칡넝쿨 얽힘 같은 갈등구조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정치지도자의 역할 정립이 요청된다. <서울디지털대 교수·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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