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학성 교수

제헌절인 7월 17일은 4대 국경일의 하나이다. 이에 비해 법의 날인 5월 1일은 법정 기념일로 법무부만 그 날을 기념하고 있다. 법에는 헌법이 포함되는데, 법의 날은 법무부만 기념하는 반면 헌법을 만든 날은 국경일로 지키는 것은 왜 일까. 4대 국경일 중, 제헌절을 3·1절, 광복절·개천절과 비교할 때 과연 그 지위나 무게가 대등한가에 의문이 들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포됐고,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로 지켜오고 있다. 이 날을 이렇게 중히 여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헌절은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독립된 국가로 성립됐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국가성을 의심하는 나라가 없지만,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 정부수립과 헌법을 공포할 당시 만해도 그리고 그 이후 상당기간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국가로 그것도 합법정부로 인정받기를 갈망했었다.

■임정 헌법, 독립운동 위한 기본법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에 한민족 정부가 세워지길 염원했지만, 당시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 종전으로 향해 갈 무렵, 미·영·중·소의 종전 후 계획이 언급될 때마다 한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또 미·소 양진영의 대립으로 대한민국을 신탁통치 하겠다는 결정까지 있었으며, 그리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까지 갔었다. 그러나 우리는 독립국가를 이루어냈다. 제헌절은 단순히 헌법이라고 하는 법을 만든 날이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독립국가가 되었음을 공포한 날이기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법의 날과 제헌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1948년 제헌과 정부수립으로 볼 것인지가 크게 다투어지고 있다. 양자 모두 나름의 논거를 지닌 주장이지만 1948년 정부수립부터로 보아야 한다.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자는 견해는 1919년 임시정부 헌법(대한민국 임시헌장)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했고, 건국헌법 전문에서는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규정하였으며, 현행 헌법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니, 임시정부로 보자는 것이다.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이유는 첫째, 임시정부 헌법은 국가(대한민국)의 기본법이라기보다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저항단체의 기본법의 성격이 강하다. 둘째, 임시정부는 고종이 해외로 망명해 정부를 구성한 망명정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임시정부에 불과하다. 셋째,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지 않은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볼 수 없다. 넷째, 앞서 언급했지만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자신의 국가성을 인정받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쟁취한 건국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저서에서 1948년 헌법을 제헌헌법 대신 건국헌법으로 표기하고 있다.

■48년은 제헌헌법 대신 건국헌법

국민들이 헌법이란 용어를 자주 접하지만 헌법이란 단어로부터 헌법의 내용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민법, 형법, 상법 등은 막연하나마 그 담고 있을 내용이 추측되지만 헌법은 그렇지 않다. 이는 헌(憲)의 의미에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헌은 만들다 조직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헌법은…을 만드는 법으로, 국가를 조직하고 구성하는 법을 말한다.

20여명이 계(契)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름도 정할 것이고, 계 조직을 이끌 임원을 선출하여 권한을 부여하며, 계원 상호간에 지켜야 할 룰을 정하게 마련이다. 곗돈은 얼마씩 불입하고 어떤 방법으로 찾으며,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어떤 제제를 가할지 정하게 된다.

이렇듯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단체의 구성과 운영 그리고 구성원 상호간의 관계를 정하는 약속이 필요하다면 한 국가의 경우, 국가의 조직을 어떻게 정하고 어떤 권한을 부여하며 국가와 국민 및 국민 상호간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는 기본 약속문서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문서가 곧 헌법이다.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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