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사회기풍이 진작되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이른바 김영란법, 곧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면서, 일단은 선진국형 공정사회가 구현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당장 중장년층 사이에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공무원 사이에선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저녁에 외부 사람을 만나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상사에게서 들었다” “자칫하다 부적절 사례로 적발될 수도 있어 약속을 취소하고 혼자 식사를 해결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하지만 '그늘'만 있는 게 아니다. 김영란법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 일식집도 손님이 늘었다. 룸이 마련된 고급 일식집은 손님이 끊겼지만 바에서 간단하게 초밥을 시켜 먹는 일식집은 인기를 얻고 있음이다.

■김영란법 시행 화환 등 감소 풍경

성수기를 맞은 결혼식장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대부분의 호텔 결혼식장에서 예약은 꽉 차 있었지만 로비를 가득 채우던 화환은 눈에 띄게 줄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화환과 축의금을 합쳐 10만원이 넘으면 단속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골프장 이용객도 눈에 띄게 줄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400만명 대부분이 몸을 사리는 중이다. 또 다른 시장을 향한 파파라치들은 대목을 만났다. 이러니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혼밥 ·혼술족’이 더욱 늘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강요된 절제’가 지속될 수 있을까. 김영란법의 무력화, 사문화(死文化)를 시도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청렴문화 착근을 언제고 훼방할 수 있다. 부정부패의 관성이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과거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후진국형 부패문화를 더 이상 지니고 갈 수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발행하는 세계경쟁력보고서를 통해 국가별 부패지수를 1일 공개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WEF의 보고서를 인용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부패정도가 심한 국가 11개국을 선정했다. 대한민국은 9위로 그 그룹 안에 포함됐다. WEF는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141개국 기업가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펼쳐 국가별 부패 순위를 선정했다. 설문조사에는 자국의 공공자금이 얼마나 많이 불법적으로 유용되는지, 정치인의 윤리적인 잣대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기업들 간에 뇌물은 얼마나 많이 오고 가는지 등의 질문이 포함됐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세계 아홉 번째 부패국가라니!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특권 없는 맑은 세상 구현 기대

이러한 결과는 그간 명백히 정부의 반부패정책 실패에 기인하는 것이며, 정권 차원의 반부패 의지의 실종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온 국민에게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게 했던 4·16 세월호 참사는 부패가 근본 원인이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로 구성되는 법조삼륜의 비리, 국방과 방산을 둘러싼 최근의 연이은 부정부패 역시 마찬가지이다. 온 나라가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고, 힘없고 가난한 국민들이 부패로 인해 생명과 재산을 잃고 있다. 사회적 신뢰는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정도까지 추락했다. 체제 기득권층의 부패불감증과 윤리적 타락은 사회적 위기를 극복할 지도력 상실로 이어진다.

김영란법이 복잡하다고들 한다. 우리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둥 말들이 적잖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반듯하게 살면 된다. 김영란법은 반칙 없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한다.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목민심서’는 이렇게 경책하고 있다. “술을 끊고 여색을 멀리하며 노래와 춤을 물리쳐서 공손하고 단정하고 위엄 있기를 큰 제사 받들듯 할 것이요, 유흥에 빠져 거칠고 방탕해져선 안 될 것이다.(斷酒絶色 屛去聲樂 齊遬端嚴 如承大祭 罔敢游豫 以荒以逸)”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청렴 의무는 직위 관련 없이 해당된다. 세상에 공짜 접대는 없기에 하는 말이다. 반드시 나중에 값비싼 청구서가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세상이 변했다. ‘논어’는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見利思義)”고 청렴을 강조하며 “잘못은 할 수 있으나 잘못을 고치지 않은 것은 더 큰 잘못.(過而不改 是謂過矣)”이라고 개전의 정을 강조했다. 김영란법을 ‘영구히 준수’해 특권이 없는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구현되길 기대한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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