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 선진민주주의의 기본 요체다. 아니 인간 공동체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담보 장치다.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패가 된다. 물론 모든 일을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인간의 자유와 창의를 방해하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에 금지하는 게 많으면 백성들은 더욱 가난해진다(夫天下多忌諱而民彌叛)”고 일찍이 설파한 바 있다. ‘좌전’에도 “나라가 망하려면 쓸데없는 법과 제도가 늘어난다(國將亡 必多制)”고 지적했다.반면 국리민복을 위한 법과 제도는 제때 제정되고, 개폐돼야 한다. 국민은 투자 부진, 일자리 부족, 과중한 세금, 금융 불안, 구매력 저하, 물가 앙등, 소비 위축, 자영업 줄도산에 시달리고 있다. 그 와중에 민생고(民生苦)가 나날이 심해지면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이런 경제 위국(危局)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사회 주체들이 힘을 모으고,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

‘야당·비박 위주’ 총선 사범 기소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법기관들이 법리 해석과 법 집행에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그래야 ‘책 속에만 있는 죽은 법’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법질서 확립의 대상이 바로 법조인이라 데 심각성이 있다.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검찰의 횡포, 무성의한 재판과 판결문을 남발하는 법관, 법 장사꾼으로 전락한 일부 변호사 등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 결핍의 법률가들이 적지 않은 세상이다.

특히 검찰의 자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꽃’이라는 전·현직 검사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이 나라 최고 실세라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도 여러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검찰의 속이 얼마나 답답할지 빤하다. 어디 이뿐인가. 검찰이 한 차례 기각당해 놓고서도 의욕적으로 다시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은 게 어디 한두 건인가.

설상가상 4·13 총선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공정성 논란이 거세다. 기소된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보다 2배가량 많다. 기소된 새누리당 의원 대부분은 비박(비 박근혜)계 인사들이다. 새누리당 공천을 앞둔 지난 1월 말 김성회 전 의원의 지역구 변경을 압박한 최경환, 윤상현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친박 실세 3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기소된 의원들이 여당보다 야당이 많고, 기소된 여당 의원이 비박계 중심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에 이중 잣대가 적용됐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친박 실세 3인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친박 3인은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김 전 의원의 지역구 포기를 노골적으로 회유했다. 어디 이뿐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새누리당 친박계 김진태, 염동열 의원을 기소하지 않은 검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타당한 지 법원에 묻는 제도로, 법원이 선관위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검찰은 두 의원을 기소해야 한다.

선관위가 오죽하면 재정신청을

김 의원은 선거 기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약 이행 평가 71.4%"라는 내용의 문자를 유권자들에게 보냈다. 선관위는 공표하지 않은 내용을 인용했다며 고발했고 염 의원은 19억여원인 재산을 5억여원으로 축소 신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단순 실수로 보고 기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가 오죽하면 이례적으로 재정신청까지 냈을까. 검찰 기소의 편파성을 여실히 뒷받침하고 있음이다. 사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수사를 놓고도 뒷말이 많다. 살아 있는 권력 눈치만 보는 정치검찰이라는 소리를 괜히 듣는 게 아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사악함을 징치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이 특정 집권세력의 눈치를 보아선 안 된다는 경구다. 권력기관이 국민 아닌 유한한 권력을 섬긴다면 반드시 개혁 대상이 된다는 건 역사의 교훈이다. 부끄러운 이름을 후대 역사에 뚜렷이 남기게 된다. 중국 전국시대 대표적 법가 한비자는 “공공의 이익을 좇아 법을 받들면 골고루 이익을 나눌 수 있다(從公奉法得平均)”고 환기시켰다. 민초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바로 세우는 공익적 법과 제도의 실천이 아쉽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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