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력을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줬다"
‘박근혜 대변인, 최순실 대통령’이라는 웃지 못할 집회장 구호까지 등장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인 게 부끄러울 뿐이다. 자괴(自愧)다. 그렇다. 작금 대한민국은 비선 실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정농단 행태에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아니 할 말을 잃고 있다. 멘붕, 패닉 상태다.


자고나면 얼토당토 않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비리가 연일 드러나면서 공분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일개 사인(私人)의 말에 공직자가 놀아나고 나라가 멍들었으니 국민의 참담한 심정을 어찌 형언할 수 있을까!

‘저잣거리 아녀자’ 최순실의 권력

최순실씨의 가공할 만한 국정 영향력을 보여주는 보도 내용이 잇따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해명대로 일부 연설문에 도움을 준 수준이 아니라 인사, 외교안보 사안 등에 개입한 흔적이 드러났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 3위 박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겠는가.

유치원 원장 경력이 대부분인 최씨 혼자 이런 일을 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최순실 사단’의 실체는 더 드러나 봐야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청와대, 정부 공직자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는 정황이 짙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청와대 사람들도 우리를 어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정부 쪽 사람들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청와대, 정부 인사들이 최씨를 어떻게 대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지경까지 오도록 청와대, 정부 책임자 가운데 누구 하나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엄벌은 물론 특단의 조치로 국정을 쇄신하는 게 급선무다. 역사에서 교훈도 얻어야 한다.

중국 명나라 말기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세도는 황제 희종(熹宗)을 능가했다. 무뢰배 출신으로 환관이 된 그는 갖은 모략으로 권력을 틀어쥐었다. 황제의 권력서열이 위충현과 황제의 유모로서 내연녀인 객씨(客氏) 다음인 ‘넘버 3’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위충현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역이 있었다. 황제를 향한 ‘만세(萬歲)’ 구호였다. 그래서 위충현이 거리를 지날 때면 ‘구천세(九千歲)’ 연호가 나왔다. 정의로운 동림파(東林派) 관료들을 탄압하고, 사병(私兵)을 배치해 공포정치를 함으로써 명나라 멸망을 촉진했다.

중립거국내각으로 풀어야 할 난국

400여년을 뛰어넘어 오늘 이 땅에서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역사의 반복인가. 최 씨 등은 미르·K스포츠를 급조해 기업들로부터 800여억 원을 빼앗더니, 이제는 딸의 대학 부정입학과 각종 특혜, 심지어 국기문란형 ‘대통령 연설문 개입’ 의혹까지 튀어 나오고 있다. 특히 최순실 딸의 전국승마대회 성적과 관련해 이를 돕지 않은 공직자들이 쫓겨났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박 대통령 자신은 사과했다고 하지만, 최 씨 등에 대해선 눈물을 머금고 측근인 마속을 죽인 제갈공명의 심정으로 결단해야 한다. ‘휘루참마속(揮淚斬馬謖)’, 인정에 흐르지 않고 법대로 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법가 한비자는 측근이 간사한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상의 정치(禁心上治)라며 “나라를 다스리는 데 상과 벌이 아닌, 나쁜 마음을 지니지 않고 악행을 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治國安家非賞罰 操心禁事 于先發)”고 힘주어 말한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최씨가 국가 기강을 흔든 괴물이 된 데는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영혼 없는 공직자들 책임도 작지 않다. ‘실세’라면 알아서 기는 일부 공직자들 처신이 100만 공직자의 자존감과 기강을 무너뜨렸다. 공복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익을 좇은 결과가 이토록 심각하다.

사상 초유의 국기 문란 사태로 멍든 국정을 쇄신하고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정부여당의 책임자급들은 물러나야 한다. 야당과 협의해 중립거국내각을 출범시키는데 사심 없이 협조하는 게 도리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이정현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는 사퇴론을 비박계의 딴죽걸기로 몰며 정면대결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계파 이해에 골몰해 국민은 안중에 없는 패권주의 본색을 다시 드러낸 셈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최순실 게이트는 ‘한 방에 훅 간다’는 말처럼 정권이 통째로 넘어가는 단초가 되고 있음을 진정 모른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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