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영수회담이 오늘 열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발화된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처럼 비선(秘線) 실세의 국정 농단 사건이 정권의 블랙홀로 등장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100만 집회’로 상징되는 국민의 분노는 날로 증폭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나라 국민임이 자괴스럽고 참담함에 할 말을 잃고 있다. 최순실은 ‘어둠의 실력자’였다.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서를 미리 받아본 그는 인사·외교·안보·행사 곳곳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다. ‘송도 말년의 불가사리’처럼 온갖 이권에도 개입해 배를 불렸다. 터지도록!

■신하가 권세 부리면 백성 삶 피폐

비선 실세의 국기문란 행위는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통치자의 눈과 귀를 가려 권력의 존립을 뒤흔든다. 최순실 스캔들을 두고 “고려를 멸망하게 한 신돈(辛旽)과 같은 사건”이라고 한다. 노국공주 사망 이후 공민왕은 정사에서 멀어졌다. 신돈은 역술과 미신으로 온 나라를 혼탁하게 했다. 신돈 주변의 간신들은 온갖 비행을 저질렀다. 측근 세력의 발호에 문신 집단의 개혁은 수포로 돌아갔다.

LA타임즈는 최순실이 제정 러시아 시대 요승 ‘라스푸틴(Rasputin)’과 같은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던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혈우병을 낫게 한 공으로 알렉산드라 황후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황제인 니콜라이 2세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로마노프 왕조는 결국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붕괴됐다. 중국 춘추시대 명재상 관자가 말한 지도자와 참모, 곧 군신관계는 오늘에도 빛난다. 그는 ‘신하가 임금처럼 함께 통치하려 하면 국가가 혼란해진다(共道致亂)’고 전제, “군주가 도리에 맞게 분명하면 상하가 통하고 발전하지만(主道分明上下亨) 신하가 권세를 부리면 백성의 삶이 왜곡되고 피폐해진다(臣權歪曲塞民情)”고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 권력자 최측근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참모나 친인척을 분수에 넘게 무조건 총애하면 힘의 향방이 군주에게서 신하에게로 옮아가 반드시 군주의 신변마저 위태롭게 한다(愛臣太親 必危其身)’는 게 역사의 교훈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지금 최순실 게이트의 흐름이 박 대통령을 옥죄고 있다. 한비자의 충고가 2200여년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 대한민국에서 보여 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 자신이 이번 사태의 ‘몸통’이라는 핵심 참모들의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 문서를 최순실 씨에게 보여주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녹음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에게 “자료를 최씨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으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백성 앞에 잘못하면 누구든 처벌

이번 사태는 대통령직에 대한 위험 관리 시스템의 고장이 빚은 참사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직접 비리나 위법행위에 연루될 위험을 사전에 탐지하고 예방하는 것은 민정비서실의 핵심적 의무다. 국정 마비에 따른 혼란을 막고 대한민국의 품격과 대통령직의 위엄을 지키기 위한 리스크 관리체제가 실패했다면, 비선 실세의 존재와 행태를 몰랐다는 변명으로 면책을 받을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악성 바이러스 한 방에 민주공화국의 운영 체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비분강개와 탄식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나게 됐는지 진단하고, 향후 국정 안정을 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실질적 2선 후퇴와 새누리당 탈당을 하는 게 온당하다. 국회 추천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분명히 밝히는 게 도리다. 19대 대선도 앞당겨야 한다.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대선을 앞당겨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재임 기간 1년 5개월 동안 거국중립내각으론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독선과 측근 비리로 인해 4·19 혁명의 국민적 분노에 떠밀려 망명 끝에 비참한 종말을 맞았던 자유당 정권의 교훈을 되새기길 바란다. 백성 앞에 잘못하면 누구든 죗값을 치르는 게 동서고금의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전제조건이 있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은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친박이 지금까지 해온 것은 정치가 아니었다. 특정인을 위한 경호대였고, 그로인한 과실을 독점하는 집단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사회적 지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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