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지금 대한민국은 고래가 새우에게 먹힌 나라가 되었다. 핏줄도 아니고 직책도 없이 호랑이의 위엄을 빌린 최순실의 여우 짓에 국민모두가 경악하고 있지만, 문제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공적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사인에게 호가호위의 빌미를 제공해 국정을 농단하게 함으로써 국기를 문란하게 했다. 나날이 새롭게 등장하는 최순실의 찌질한 행태는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틈을 주지 않는다.

■ 국가원수가 무인가 조직에 먹힌셈

국가 존립과 안보, 계속성을 책임져야하는 대통령의 얼토당토않은 한심한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낮에는 근엄한 국가지도자인양 하면서 늘 남 탓만 하다가, 밤에는 동네 아줌마로서 진짜 동네 아줌마와 시시덕거리면서 수다로 장차관을 들었다 놨다 했을 터이고, 정책과 예산을 마구 주물렀다. 조그만 구멍가게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러니 ‘이게 나라인가’라는 팻말이 등장할 법하다.

적막한 구중궁궐의 외로움에 싸여 있다 보니, 대통령에게는 공조직보다 최순실의 자문그룹이 편했을지 모른다. 일과를 마치자마자 전화통을 붙잡고 낮에 있었던 일과 어제 못 다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었을지 모른다. 어떤 내용의 통화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얼굴관리가 생략되었을 리 없다. 국내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청와대에 피부를 담당하는 의사는 없는가보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연민을 배신으로 돌려줬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무인가 사설 조직에 먹힌 셈이다.

국가위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키울 궁리만 하는 정치인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자신의 셈법에 따라 움직이면서 마치 전체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백만 촛불집회를 바라보고 나서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하는데, 국민의 리더인지 팔로어인지 구별이 서지 않는다. 정권퇴진도, 총리를 추천하고 난국을 수습하면서 해야 한다. 전체 국민이 일부 정치인에게 먹힌 꼴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검찰은 우병우 전 수석이 고발당한지 114일 만에 압수수색을 하면서 휴대폰에 문자나 통화기록은 없다고 한다. 수비체제를 모두 갖춘 후에는 골문을 뚫기가 어렵다. 팔짱낀 피고발인 앞에서 검찰이 두 손을 공손히 가지런히 놓고 신문하는 모습은, 검찰조직 전체가 우병우에게 먹힌 셈이다. 검찰의 늑장에 봐주기 무능이 도를 넘었다.

■ 후임위해 ‘연명치료’ 중단해야

대통령의 리더십 상실로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져있다. 출구를 찾으려는 것이 이 글의 중요한 목표이다. 하야,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사임의 경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는데, 후보자 검증에 요구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또 사임 후에는 바로 구속될 수도 있어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탄핵도 시간만 일부 연장할 뿐 그 결과는 사임과 동일하다.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을 바르게 선출할 수 있도록 하면서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각 정당이 후보선출에 필요한 기간과 대통령 선거기간(23일)을 감안해서 퇴임날짜를 정하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그러면 감책(減責)될 수 있다. 지금의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다. 절뚝거리는 레임 덕이 아니라 죽은 오리인 데드 덕이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거부하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4년의 세월이 정말 아쉽고 안타깝다.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의 문턱에 있는데, 가난한 집 쪽박까지 깨버린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정관정요 같은 책들을 읽고 노트에 적었는데 몇 년 뒤 그런 글들이 어느새 저의 피와 살이 돼 있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당 태종의 치적을 기록한 정관정요에는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대통령이 이 부분은 노트에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때로는 뒤집을 수도 있다. 외신은 백만인 촛불시위를 사고 없이 터질듯 한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킨 우리 국민을 극찬한바 있다. 대통령은 그런 국민을 우롱하지 마라. 구국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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