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인 게 부끄럽다. 참담하다. 이 나라 최고 통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그곳도 압도적으로. 국회의원 300명, 투표 참가 의원 299명 중 찬성 234표다. 친박(친박근혜)계마저 등을 돌렸으니 박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최장 6개월 내에 매듭지어질 헌법재판소의 인용 여부 결정이 남았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다했다.

공적 조직이 대통령 측근 극소수 민간인 일당의 국정농단에 무력화됐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했다. ‘촛불 민심’은 여의도에 그대로 전달됐다. 선거를 통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직무유기에다 부패비리에 ‘주범격 공범’역할을 했으니 사법적 단죄를 하라는 민초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다. 현실이 이러니, 탄핵안 가결에 대해 “국민의 승리”라는 찬사가 회자됨은 자연스럽다. 

■스스로 해치고 버린 박 대통령

맹자의 말이 가슴을 친다.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더불어 행동할 수 없다(自暴者不可與有言也 自棄者不可與有爲也).” 박 대통령 스스로 해친 자포(自暴)이자, 스스로 자신을 버린 자기(自棄)인 셈이다.

자, 이제 우리 국민은 어찌 해야 할까. 제안한다. 불통의 권위주의 시대를 결별하고, 상하좌우 소통의 기반 위에 국민통합적 새로운 선진 대의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그렇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국내외 경제 기관이 줄줄이 내년 성장 전망치를 낮출 정도로 경제 여건은 먹구름인데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는다. 안보, 경제, 거버넌스(통치)의 위기를 극복할 정부·정치권의 협치 시스템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 탄핵은 미래의 시작’ 이라는 말대로 당리가 아닌 국익을 앞세우는 야권의 자세 전환이 시급하다.

우리 국민들은 국가 위기 때마다 단합된 힘을 보였다. 참혹한 전쟁의 포화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일군 것도, 1997년 외환 위기의 파고를 넘은 것도, 2008년 전 세계 금융 위기와 북한의 잇단 도발 사태를 극복한 것도 국민의 힘이었다. 대통령에 대한 실망, 분노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주말마다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 곳곳을 채웠어도 불상사 하나 없었던 평화로운 집회가 ‘질서 있는 탄핵’을 만들었다. 온 세계가 경탄스러운 눈으로 지켜봤다.

이제 최종적인 탄핵 결정권은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 주변에서 촛불 집회가 열리곤 있지만 탄핵 심판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 재판관의 법률가적 양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과 엄정성이 보장돼야 국민 모두가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이번 탄핵안 가결은 박 대통령 개인의 진퇴를 정하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래야 광장의 촛불이 진정한 ‘시민혁명’으로 기억될 것이다. 국회 차원에서 개헌을 포함한 국가 시스템의 재편을 공론화하길 기대한다.

■민주주의 성숙시키는 계기로

아울러 이번 ‘탄핵 사태’를 계기로 정직함이 자산이요 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확인케 하는 일대 쇄신운동으로 승화되길 바란다. 공정한 사회, 제도나 사람에 대한 신뢰, 상호배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직과 관련된 문제임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기에 그렇다.

특히 지도자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지도자가 작은 일이라도 반듯하게 처리하면 공동체의 질서가 잡히고, 공사 구분 못한 채 난잡하게 처신하면 주변에 미치는 악영향은 불 보듯 훤하다. 하물며 나랏일을 책임지는 지도자임에랴. 옳은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하고, 그른 일은 비판하고 멀리해야 공동체가 존속 발전함은 불문가지다. 법과 규범을 정직하게 지키지 않는데 준법사회, 준법경영이 될 수 없다. 물론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신상필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 춘추시대 최고의 명재상으로 일컫는 관중, 곧 관자의 깊은 경륜이 묻어나는 말은 오늘에도 울림이 크다. 관중은 ‘근본을 가볍게 여기면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輕本傾國)‘며 “나라가 다스려지고 임금이 존귀한 것은 법에 의거한 말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靖國尊君根重令), 위법한 행위를 했는데도 봐준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犯禁蒙恩何爲正).”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현안들이 법규와 양심에 정직한 논의와 대책이 추진돼  올바른 방향으로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누구보다 ‘선출된 권력’ 정치인들이 국리민복을 위해 멀리 내다보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글로벌 시대, 경쟁국들은 뛰고 있는데….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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