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형

1920년대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태동기의 역사를 함께한 시인 김수영. 그는 시 ‘풀’에서 모진 바람에도 다시 일어서는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민중을 억압하는 시대의 바람이 모질게 불어도, 풀과 같은 민중은 다시 일어선다. 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는다. 가진 것이라곤 자기 몸뚱이와 먹여 살려야 할 가족 밖에 없는 민중의 힘, 즉 민주주의가 여기서 싹 튼다. 바람이 불어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의연하게 웃으며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풀’은 시인 김수영의 마지막 시다. 시인은 그렇게 생애 마지막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민중, 즉 풀의 생명력을 노래하며 생을 마감했다.

올해 7월에 출간한 조정래 작가의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서 작가는 우리나라의 경쟁적 입시 교육 시스템 하에서 낙오되고 배제된 학생들을 풀꽃에 비유했다. 앞에서의 시가 풀이 지닌 질긴 생명력을 노래했다면, 이 소설은 풀꽃이 가진 소소한 아름다움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의 말을 잘 듣고, 시험 잘 보고, 1등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희망의 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풀꽃도 꽃이다.

이렇듯 문학가들은 작디작은 풀에서 민중의 모습을 발견한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풀들이 드넓은 초원을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이 세상을 평범한 시민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발상이다. 그래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꿋꿋이 살아가는 서민들을 민초(民草)라 부른다.

최근 대통령과 어느 한 개인이 자행한 국정농단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민초들의 가슴에 배신과 모욕이라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길가에 버려져 무참히 짓밟혔다. 가수 이승환, 이효리, 전인권 씨를 필두로 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부른 ‘길가에 버려지다’라는 곡은 이러한 민초들의 아픔을 대변한다. 내 몸과 꿈과 의지에 날개가 돋아 정의와 진실이 바로 서는 세상다운 세상을 희망해보지만, 도무지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려고 해도 암담한 현실이 우리의 날개를 꺾는다. 우리는 그렇게 길가에 버려졌다.

이런 어두컴컴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밝혀보기 위해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민초들에게 촛불은, 설령 그것이 바람 앞에 있다 할지라도, 서로의 불씨를 나누어 쉽게 다시 켤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상징한다. 민초들이 촛불을 드는 이유다. 이를 두고 어느 한 지역구 국회의원은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금방 꺼질 것이라며 촛불 민심을 비하했다. 수많은 민초들이 바람 앞의 촛불을 보고 재기(再起)와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품었을 때, 어쩌면 이 의원은 민초들의 지지를 잃고 힘없이 스러져가는 정권과 그 정권의 하수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민심과 함께 해야 할 국회의원이라는 그는 민초들이 촛불을 드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 있을까.

<권순형 강원대학교 행정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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