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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문 칼럼] 철학적 인식과 작가적 양식서울디지털대 교수·문학박사
   
 

정치철학이라는 말도 있고 예술철학이라는 말도 있다. 정치를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철학적 인식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정치를 보나 예술을 보나 철학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때로는 철학의 부재를 느끼기도 한다. 왜 그럴까?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깊이 생각하지 않을까?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책을 세 배 이상 많이 읽는 일본인들의 사고력과 한국인들의 사고력을 비교해 보면 수월하게 이해된다.

■ 사람을 이롭게 하는게 정치 본질

영국인들은 신사적이고, 프랑스인들은 문화적이며, 미국인들은 실용적이라 한다. 일본인들은 친절하고, 중국인들은 엉큼하며, 한국인들은 다혈질이라고도 한다. 걸핏하면 흥분을 잘하고 화를 잘 낸다. 그저 빨리빨리 서두르고, 편리함과 발전만을 추구할 뿐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을 살피지 않는다. 그래서 옛말에 아는 길도 물어보고 가라고 했다.

정치철학은 정치의 본질이라든지 이념, 가치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예술철학 역시 예술의 본질이나 가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 본질을 거슬러 올라가면 홍익인간, 즉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에 귀착된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 원인도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에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은 국정농단 사태를 비춰볼 때 나라를 이롭게 하고 국민을 이롭게 하려면 정부의 관료나 정치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 해답은 자명하다.

지금 대한민국 호라는 배가 구멍이 났다. 조선조 당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다가 일제에 나라까지 빼앗기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게 현실이다. 조기대선 앞에서 당리당략에 목숨건 정치인들의 작태에 한숨부터 나온다.

왜 그럴까? 역사의식과 철학의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들도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이 장사가 안 된다고 폐과시켜놓고선 이제 와서 후회한다. 철학이 없는 실용주의는 머리 없는 몸과도 같다.

■ 철학 빈곤이 대한민국을 구멍나게

예술계에도 정치계처럼 철학의 빈곤은 마찬가지다. 예술 중에서도 문학한다는 사람들이 정권에 빌붙어서 뿌려주는 모이를 끼리끼리 뿌려주고 챙겨먹는 꼴은 참으로 가관이다. 한편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시끄럽다. 연기자 한석규는 지난 연말 연기대상 소감에서 '블랙'을 테마로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문인은 만년야당이어야 한다고 갈파한 청마 유치환 시인의 일갈이 더욱 빛나는 대목이다.

정치가는 미래 항로를 예견할 줄 아는 정치철학이 있어야 하고, 시인 작가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양식이 있어야 한다. 문예는 창작 기법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기교는 남에게서 배울 수 있지만 사람됨은 스스로 닦아야 한다. 전통과 현대는 부자의 관계와 같고, 묵은 간장과 풋 채소의 관계와도 같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새로운 변모가 아들에겐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소란해도 명경지수(明鏡止水)로 마음을 다스리기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글 때를 벗어야 한다. 불을 이기고 나온 청자 백자처럼, 잔설의 여운 같은 시설(柿雪)이 앉은 글을 남기고 떠나야 한다. 부드러운 물은 강한 쇠를 자를 수 있지만, 강한 쇠는 부드러운 물을 자를 수 없다. 정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예술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황송문 서울디지털대 교수·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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