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고통’이 여간 큰 게 아니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의 당위성은 전폭적 공감 아래 시행되고 있지만, 착근 과정에서 서민경제가 예상 보다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현재 청탁금지법 시행령에서 허용하고 있는 가액기준은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가액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한국행정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식품접객업과 유통업, 농축수산·화훼업 등 업종의 사업체 40.5%가 법 시행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10월 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점 및 주점업' 종사자 수는 1년 전보다 3만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김영란법은 법 제정 취지의 정당성 못지않게 규제 내용과 대상 등을 놓고 작지 않은 우려를 샀던 터다. 예컨대 공직자 외에 민간 영역까지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과잉 입법'이 아닌지, 청탁·금품수수의 허용 기준이 모호해 ‘도덕 사찰’이 일반화되는 게 아닌지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물론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청렴성을 강조하고자 법이 마련됐지만, 일부 조항에서 위헌 가능성도 제기됐다.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은 포함시키면서 국회의원을 뺀 것을 놓고 거센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선출직 공무원을 공직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농축산물 선물 등 일부 조항의 경우 과잉금지원칙 위배 등 위헌 논란이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의 개정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마침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측은 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만시지탄이다. 황 권한대행 측은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영향이 정말 심각하다"며 "서민들, 자영업자들, 음식점의 상황이 정말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훼업자나 축산농가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다"며 "음식점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식당에서 음식 값을 낮추다 보니 수입산을 사용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는 구체적 사례까지 적시했다. 향후 논의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면서도 법보다는 시행령을 개정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구체적 설명을 곁들였다.

과제가 없지 않다. 당장 정부 부처내 조율부터 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 측 의견은 청탁금지법과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입장과 배치된다. 부처 간 갈등의 불씨는 사전에 없애는 게 행정력 낭비를 막고 국민적 혼선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부패는 없애야 한다. 법적 장치가 있다고 해서 부패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공직자 부패는 보다 구체적이고 은밀한 형태를 띠고 있다. 법규를 위반하고 부당한 개인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부패 예방 및 엄정 척결이 시급한 이유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는 덴마크와 뉴질랜드, 핀란드는 국제 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2015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차례대로 1, 2,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상국가 175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김영란법은 강력히 시행되되,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은 하루바삐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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