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행정학박사

다시읽는 이순신 전
Ⅱ-Ⅰ 공직자의 본분에 충실한 자세

군인으로서 전쟁을 준비하고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정비하고 군기를 세우는 일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200여년의 태평성대의 세월 속에서 조정의 대신들도 백성들도 모두 평온함과 안일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순신의 군인의 본분을 지키려는 근무자세는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여론에 개의치 않고 공직자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군선을 제조하고 무너진 성을 다시 보수하고 군량미를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 움직였다. 철저한 공직자의 자세이며 완벽주의자였다. 이를 볼 때 이순신이 성격이 그다지 부드럽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벼슬은 거의 무관으로 많이 보냈는데 강직한 성격과 독선적인 면도 가끔 보여 관직생활이 평탄치 않아 영전과 좌천을 번갈아 했다. 무려 세 차례나 파직을 당했으며 두 차례의 백의종군을 하기도 했다. 절친한 친구는 많지 않았으나 성품은 곧고 맑았다. 윗사람의 지시라도 부당하면 거절해서 평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전쟁 발발하기 직전까지의 일기 내용을 읽어보면 이순신이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떻게 전라좌도 수사 임무를 수행했는가를 알 수 있다. 첫째 가족과 관계된 사생활. 둘째 공적인 업무 수행. 셋째 전쟁에 대비한 업무. 넷째 개인에 관련된 일 등으로 구분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가족과 관계된 사생활
•1월1일 새벽에 여필과 조카 봉, 아들 회가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을 떠나 남도에서 두 번이
나 설을 쇠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다.
•1월23일. 둘째 형 요신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월24일 큰 형 희신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
둘째, 공적인 업무수행
•1월2일 . 명종의 비 인수황후 심씨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월3일. 아침 일찍 동헌에 나가 별방군을 점검하고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띄웠다.
•1월26일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흥양현감 배홍립과 순천부사 권중이 와서 이야기 했다
셋째, 전쟁에 대비한 업무
•1월11일 . 이봉수가 선생원의 채석장에 가 보고는 큰 돌 17개에 구멍을 뚫었다고 보고 했다.
•2월2일 동헌에서 일을 본 뒤에 쇠사슬을 매는데 필요한 크고 작은 돌 80여 개를 실어왔다.
•2월13일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군관이 와서 화살대 큰 것. 중간 것 1백 개와 쇠50근을 보냈다

넷째, 이순신 개인에 관련된 일
•2월2일 활 10순을 쏘았다. 활 다섯 대를 연거푸 쏘는 것을 1순이라 한다
•2월3일 공무를 마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12일 활쏘기 10순을 했다
•3월25일 활쏘기 10순을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난중일기’를 세밀하게 읽어 본 결과 개인에 관련된 일은 활쏘기를 하거나 개인의 무예를 익힌 것이 거의 전부이며 아파서 누워있을 때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순신은 군관들과 모여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활쏘기 시합을 자주 열었다. 활쏘기는 중요하다. 바다에서 전쟁을 하는 특성 때문에 적과 떨어진 상태에서 활과 포로 먼저 전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접근전을 펼칠 때는 칼과 창이 유리하지만 좁은 전선(戰船) 안에서 싸워야 할 때에는 적과 떨어진 상태에서 활과 포로 먼저 전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전쟁준비에 전력을 쏟고 있었음을 ‘난중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계속)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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