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일 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행정학박사
다시읽는 이순신 전
Ⅱ-Ⅰ 공직자의 본분에 충실한 자세
첫째, 가족과 관계된 사생활
•1월1일 새벽에 여필과 조카 봉, 아들 회가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을 떠나 남도에서 두 번이
나 설을 쇠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다.
•1월23일. 둘째 형 요신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월24일 큰 형 희신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
둘째, 공적인 업무수행
•1월2일 . 명종의 비 인수황후 심씨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월3일. 아침 일찍 동헌에 나가 별방군을 점검하고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을 띄웠다.
•1월26일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흥양현감 배홍립과 순천부사 권중이 와서 이야기 했다
셋째, 전쟁에 대비한 업무
•2월2일 동헌에서 일을 본 뒤에 쇠사슬을 매는데 필요한 크고 작은 돌 80여 개를 실어왔다.
•2월13일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군관이 와서 화살대 큰 것. 중간 것 1백 개와 쇠50근을 보냈다
넷째, 이순신 개인에 관련된 일
•2월2일 활 10순을 쏘았다. 활 다섯 대를 연거푸 쏘는 것을 1순이라 한다
•2월3일 공무를 마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12일 활쏘기 10순을 했다
•3월25일 활쏘기 10순을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난중일기’를 세밀하게 읽어 본 결과 개인에 관련된 일은 활쏘기를 하거나 개인의 무예를 익힌 것이 거의 전부이며 아파서 누워있을 때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순신은 군관들과 모여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활쏘기 시합을 자주 열었다. 활쏘기는 중요하다. 바다에서 전쟁을 하는 특성 때문에 적과 떨어진 상태에서 활과 포로 먼저 전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접근전을 펼칠 때는 칼과 창이 유리하지만 좁은 전선(戰船) 안에서 싸워야 할 때에는 적과 떨어진 상태에서 활과 포로 먼저 전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전쟁준비에 전력을 쏟고 있었음을 ‘난중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계속)
<유인일 행정학박사·제천시통일안보전문관>
일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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