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변한다. 유한하다. 권세가 10년을 넘기지 못하기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했다. 무상(無常)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사람들은 힘 있는 자에게 줄을 대고, 측근임을 과시하며, 힘을 휘두르다 종국엔 본인도 당한다. 밝고 따뜻한 불만 쫓다 타죽는 부나방처럼!

한때 ‘미스터 법질서’로 불렸던 김기춘 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로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법 위의 군림자’라는 세간의 비판에서 보듯 초심을 잃은 나머지 나락(奈落)으로 구른 인생 황혼기이다. 해박한 법률지식과 탄탄한 논리로 법망을 잘 빠져 나간다는 의미에서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 별명까지 얻은 그였지만, 이번에는 사법처리를 피하지 못했다. 물론 재판 과정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인간 김기춘의 인생’은 오욕의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장관 지낸 김기춘 구속

왜. 심은 대로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인과응보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 2인자’가 되기까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1964년 서슬이 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엘리트 검사’ 코스를 밟으며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했고, 중앙정보부에 파견돼 대공수사국장을 지냈다. 뒤이은 전두환 정권 때에는 검찰국장, 노태우 정권에선 검찰권력 정점인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약관 20세에 최연소 사법시험에 합격한 게 보여주듯 그의 천재성에 기반한 ‘빠른 출세’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권력에 눈 먼 한 부나방 같은 추잡한 행각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 싶다.

“우리가 남이가!”1992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초원복집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기춘은 법무장관 퇴임 직후인 92년 12월 11일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당시 부산 지역 기관장들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 참석자는 김영환 부산직할시장(현 광역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실장은 "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의 발전에 긍정적이다.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된다"며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나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고 말했다.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남겼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그들 뜻대로 여당 후보 김영삼이 당선됐다.

■세력 의지해 남 능멸하면 되받아

당시 검찰은 그를 불법 선거개입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최고의 법률 전문가답게 김 전 실장은 사건 쟁점을 ‘고위 공직자의 대선 개입’에서 ‘불법 도청’으로 틀어 버렸다. 초원복집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제2야당 정주영 후보 측인 통일국민당 관계자와 전직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이 식당에 녹음기를 설치해 뒀기 때문인데, 이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 본말전도였다. 옆집에 침입한 강도를 잡았는데 잡는 과정에서 깨트린 간장독을 시빗거리로 문제 삼은 셈이다.

이후 이 사건은 역사상 악의적인 지역감정 선동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당시 '권력은 복집에서 나온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고 이 자리를 주도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에 대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4반세기 전 망국적 국론분열을 심화시킨 언사를 지껄였던 김기춘 전 실장이 이제야 자신의 ‘친정’ 검찰에 의해 덜미를 잡혀 영어(囹圄)의 신세가 됐다.

권력은 구름 밑 그늘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며 쉬는 것처럼 찰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구름은 온종일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고 흘러가듯 권력도 마찬가지다. 보스를 믿고 온갖 협잡꾼 같은 짓을 앞장서 행한 이들은 실권했을 때 동지는 흩어지고 보복을 당하게 돼 있다. ‘현문’은 이렇게 경책하고 있잖은가. “세력에 의지해 남을 능멸하면 세력이 사라진 뒤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게 된다.(倚勢凌人 勢敗人凌我)”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도 뇌물수수 등 혐의로 사법처리가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박정희ㆍ박근혜 대통령 일가와의 인연은 운명”이라고 했던 김기춘 본인의 말처럼, 그도 박 대통령과 함께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참회가 도리다.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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