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봉 정치부장

중·고등학교 교육을 병들게 하고 있는 집중이수제도는 한국교육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객관식 위주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기인한다. 옛날에는 4지선다형 시험을 보다가 개선해서 나온 것이 5지선다형으로 한 개의 정답 또는 간혹 두 개의 정답을 선택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학교선생님들의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고 약간의 주관식 문제가 추가됐다.

언어를 이해하고 활용하고, 수학이 가져다주는 논리적인 사고는 필요 없었다. 영어로 대표되는 외국어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괴물이 되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외국어 교육에 전념하도록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는 인출기가 됐다.

■ 창의력 가둔 '5지선다' 학업평가

흔히 말하는 5지선다형 학업성취도 평가는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암기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인정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그 결과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을 추가하면 10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외국 나가면 말 한마디 못하는 한국인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수 없이 바꾸었지만 대학수학능력 평가 외국어 영역은 아직도 7080세대에서 배우던 문법위주의 영어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특히 한국식 영어교육은 미국인이나 영국인들도 잘 사용하지 않은 고급단어나 특이한 표현을 종종 사용해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많은 학생들이 외국어영역 시험문제에서 전체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 개 단어에 힌트를 얻어 문제를 찍어서 맞히는 형편이다. 최근 미국이나 영국의 학생들이 한국에서 출제된 수능외국어영역의 문제를 풀다가 도저히 못 풀겠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문제가 너무 많은 경우가 방송이나 SNS에 올라와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5지 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에 길들여진 출제위원들과 학생들은 어쩌면 ‘누가 더 어려운 문장을, 누가 더 어려운 문제’를 풀 줄 아는지 경쟁하는,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무한사회에 던져진 것 같다. 이러한 결과 한국의 교육현장에서는 고등학교 때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대학에서 공부에 맛들 린 사람들이 종종 나타난다. 많은 중. 고등학생들이 생각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싶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열심히 뛰어 놀고 싶지만, 획일화된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교육에 양보하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 독재자에 충성하는 愚民 만들어

이는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교과부와 학교, 그리고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국어, 영어, 수학이라는 하늘아래 일체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못하도록 한 쇠창살 없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인 6년간의 감옥과 같다.
학생들의 창의력은 교과부의 지시사항으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대통령이 어느 날 창의력을 강조하며 학교를 전격 방문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창의력은 제대로 된 교육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창의력뿐만 아니라, 다양성, 그리고 말로만 듣던 전인교육은 1학기 2회, 2학기 2회 걸쳐서 시행되는 객관식 시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매 학기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시험지옥을 경험하는 학생들에게는 독재자와 재벌총수에게 말없이 충성하는 양순한 우민(愚民)이 만들어질 뿐이다.
공교육이 살아야 학생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살 수 있다. 무너진 공교육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삶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국가를 피폐하게 만든다. <김재봉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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