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표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

▲ 국회 의원회관에 전시됐던 '더러운 잠' <사진 국회 공동취재단>

[일간투데이 김재봉 기자] 2012년 대선운동 기간에 박근혜 대선후보가 산부인과 수술대 의자에 누워있고, 선글라스를 쓴 아이를 출산하는 그림이 화제가 됐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로 보이는 사람은 선글라스를 쓴 아기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취한다.

그림의 해석을 하면 선글라스를 쓴 아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의미하고, 당시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민주정권 10년이 무색할 정도로 다시 유신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풍자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했던 통치 스타일을 그래도 옮겨 받았고, 최근 드러나는 정황증거들이 유신시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과 관습을 유지하고 있어 최순실 국정농단과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운동 기간 당시 풍자됐던 박근혜 출산 그림은 모든 국민들이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새누리당을 제외한 야권진영, 그 중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 조차도 전폭적으로 박근혜 출산그림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 출산 그림은 찬반 논쟁만 뜨거웠지 사회적 큰 파장을 불러왔다고 하기는 어렵다.

■2012년 박근혜 출산 그림과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전시회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주최가 되어 ‘표현의 자유를 지향하는 작가 모임’과 함께 현 시국을 풍자하는 그림 전시회를 열었으며, 전시된 그림 중 ‘더러운 잠’이란 제목의 그림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네의 작품 ‘잠자는 비너스’를 모티브로 한 박근혜 대통령 누드그림이다.

문제가 된 ‘더러운 잠’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 그림에는 박 대통령의 몸 위에 백구 두 마리와 싸드 미사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이 있고, 옆에 있는 최순실은 주사기로 만든 꽃다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림의 배경에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가 우측에 위치하고 있고, 좌측의 태극기에는 박 대통령의 얼굴이 있다.

사실 그림의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놓고 보면 2012년 홍성담 화백의 박근혜 후보 출산 그림들이 더 큰 문제점을 갖고 있다. 홍성담 화백의 그림 중 나체의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있고, 여성의 성기에서는 머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뱀의 형상이 출산되는 장면을 그린 것도 있다.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이번 전시회에 문제가 된 ‘더러운 잠’은 오히려 홍성담 화백의 출산 그림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그럼 무엇이 이번 전시회를 더욱 심각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는가? 지난 2012년 박근혜 출산 그림 시리즈는 홍성담 화백 개인의 전시였지만, 탄핵정국과 맞물린 상황에서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의 주최로 열린 전시회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모델로 삼았지만 지난 2012년 출산 그림도 여성의 인격을 고려하지 않은 노골적인 출산장면이 문제가 됐다. 표창원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블랙리스트와 국정농단에 분노한 예술가들이 국회에서 시국을 풍자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어 의원실로 요청했고, 표창원 의원이 “전례가 없지만 시국의 특성과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회에서 예술에 대한 사전검열이나 금지를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설득해서 전시회가 열렸다고 해명했다.

2012년 대선운동 기간 중 문제가 됐던 홍성담 화백의 '박근혜 후보 출산 그림'

■많은 사람들이 보기 원했다면 왜 국회에서

문제점 인식의 부족은 전시회장소를 국회로 선정한 것이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를 하면 모든 관람객들은 신분증을 지참하고 의원회관 로비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국회 출입이 자유로운지, 국회의원회관 조차도 일반인들이 입장이 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대중들이 이 그림을 보기를 원했다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을 전시회장으로 섭외를 하거나, 교통이 편리한 갤러리를 섭외했어야 했다. 아니면 광화문광장이나 청계광장에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현 시국을 풍자한 이 그림을 보도록 했어야 옳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국회 의원회관을 전시회장으로 정하게 된 의도가 궁금하다.

두 번째 문제점 인식의 부족은 탄핵정국과 조기 대선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전시하는 작품을 미리 살펴보지도 않고 국회 사무처를 통해 전시허가를 받아줬다는 점이다. 표창원 의원의 해명을 들어보면 어떤 그림들이 전시될 것인지 숙지도 못하고 20일 저녁 8시에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토크 콘서트까지 개최했다고 한다.

흔히 예술가들이 해외에서 인정되는 통상적인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기준으로 한국에서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유럽 또는 미국에서 허용되는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한국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어느 선까지 인정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면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희극,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불문하고 필요에 따라 방송에서 남녀의 나체와 성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한국의 방송 채널에서도 필요에 따라 남녀의 나체와 성기가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동양과 서양은 인식의 차이와 함께 문화적 배경이 다르므로 허용되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인 비판은 공약의 허와실, 그리고 정책으로 비판해야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그들이 내세우는 공약의 허와 실을 가지고 판단해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정치인 또는 유명인을 대상으로 성적인 수치심을 이용한 비판은 무조건 허용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다.

상상할 수 없는 죄를 지은 범죄자가 있다고 21세기 사회에서 중세처럼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옷을 모두 벗기고 공개적인 창피를 주면서 형벌을 가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국가가 있다면 21세기 지구촌은 그 나라를 미개한 국가라고 인정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지구촌 대부분 국가들은 예술과 포르노를 구분한다. 물론 최근 들어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경향도 있지만, 최근 박근혜 출산 또는 누드그림이 포르노와는 차이를 보여도 예술의 표현으로 볼수 있을지는 한국사회가 좀 더 심사숙고해야할 부분이다.

한편,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그림전시를 놓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그의 SNS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누드그림이 국회에 전시된 것은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입니다. 작품은 예술가 자유이고 존중돼야 하지만 그 작품이 국회에서 정치인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았습니다. 예술의 영역과 정치인의 영역은 다릅니다.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라고 했다.

표창원 의원이 주최한 전시회가 말썽이 발생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표창원 의원을 윤리심판원에 회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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