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광화문 광장과 청계광장, 헌법재판소 주변 등은 고성으로 가득하다. 박근혜 대통령탄핵 찬반을 놓고 벌어지는 극한 대결의 장이 보여주는 행태다.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저질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조만간 가름된다. 헌재가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대한 인용 여부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빠르면 이번 주말인 9일, 10일, 늦어도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일인 13일엔 최종 선고가 되리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작금 우리 사회 분위기로선 어떻게 결론이 나든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대선 고지를 넘어 집권한다 해도 반쪽짜리에 머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태극기로 쪼개져 탄핵 찬반을 외치고 그 분위기는 험악하다 못해 섬뜩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집회 여기저기에 마치 테러를 부추기기나 하듯 헌재 재판관들의 실명과 얼굴 사진이 내걸리는가 하면 헌재결정에 불복하겠다는 핏발선 구호가 난무했다. 선고일이 다가오면서 그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대로 두면 어떤 결정이 나든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헌재 압박 저질 언어들 난무

야권 주자들은 지금과 같은 불투명한 언사와 태도를 버리고 국민 앞에 헌재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승복하겠다고 밝히게 온당하다. 그게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다. 물론 더 중요한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먼저 승복 선언을 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억울한 마음이 있더라도, 애국심으로 원통함을 눌렀으면 한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에 비해 국민 직접 득표수는 많았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져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은 "나는 트럼프가 모든 미국인을 위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한다"라고 깨끗한 승복의 의사를 밝혀 큰 감동을 주었다.

이에 앞서 2000년 11월 미국 대선은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로 팽팽히 맞섰고 최대 격전지인 플로리다 주 딱 한 곳의 개표를 남겨 놓고 고어가 20표 앞서고 있었다. 플로리다 주 선거인단은 25표. 누구라도 여기서 이기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부시 승리였다. 그러나 투표용지에 문제점이 발견됐고 고어는 승복을 보류한다. 그로부터 무려 5주간 지루한 법적공방이 벌어졌다. 미국은 공화·민주 양당 간 극한 대립에 빠졌다.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오던 날. 고어는 역사에 남는 승복 연설을 한다.

"나에게 힘을 실어준 지지자들이 느끼는 것처럼 나도 실망스럽다. 그러나 애국심으로 실망감을 극복해야 한다. (중략)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짊어질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새 대통령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자. 그것이 미국이다."

■냉정·품격으로 결과 승복을

우리도 이처럼 성숙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대선주자에 이어 박 대통령까지 승복 의사를 밝힌다면 탄핵결정 후 국가적 혼란은 줄일 수 있다. 그리하면 나머지 대선주자들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하루빨리 광장의 ‘분노한 에너지’를 빼내야 한다.

헌재의 탄핵결정은 국가 사법 시스템에서의 최종적 조치다. 탄핵에 대한 더 이상의 법적 조치는 남아있지 않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우리 헌정사에 길이 남을 재판이다. 헌재의 재판절차와 재판관의 언행 하나하나가 역사에 기록된다. 8인의 재판관들은 찬반 세력이나 정치권에 휘둘리지 말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오로지 헌법 정신과 가치, 법리와 양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당부할 바는 역사적인 재판에서 대통령의 위엄을 지켜야 할 박 대통령 측이 시간 끌기와 불복 입장 시사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 측도 나라의 위신을 생각해 언행에 신중해야 하며 공정성을 해치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 역사가 지켜보는 만큼 양쪽 모두 법리 대결은 치열하게 벌이되 마지막까지 냉정과 품격을 지켜야 한다. 여든 야든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국익과 국민만을 바라보고! ‘맹자’의 오래전 가르침이 가슴에 남는다. “큰 정치를 하면 많은 이들이 돕고, 정치를 잘못하면 사람들이 등 돌려 돕는 이가 적다. 도와주는 사람이 적은 것의 극치에는 친척들도 배반하고, 돕는 사람이 많은 것의 극치에는 천하의 백성들이 따른다.(得道多助 失道寡助 寡助之至 親戚畔之 多助之至 天下順之)”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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