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1950년 9월 27일 새벽 3시 한국 해병대 2대대 6중대 1소대장 박정모 소위와 소대원들은 대포 연기 자욱한 세종로를 지나 중앙청으로 향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있은 지 열이틀 뒤였다. 두 시간 남짓 북한군 잔당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동이 틀 무렵 대원들이 중앙청 안으로 들어갔다. 옥탑으로 가는 사다리가 폭격으로 끊겼다. 대원들은 혁대를 이어 만든 밧줄로 옥상에 올라가 태극기를 동여맸다. 석 달 만에 서울 하늘에 휘날리는 대형 태극기는 많은 시민들에게 수복된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

■ ‘두동강난 나라’ 정치인이 달라져야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배 타고 일본 고베에 도착해 숙소 건물 위에 태극 사괘 도안이 그려진 기를 게양했다. 태극기의 유래다. 이듬해 고종은 태극기를 국기로 정했다. 이후 3·1운동, 8·15광복, 한국전쟁, 4·19혁명… 현대사의 굽이굽이를 지나올 때마다 태극기는 항상 민족과 함께했다.

한동안 우리 국기는 너무 엄숙했다. 미국의 성조기, 영국의 유니언 잭, 프랑스의 삼색기가 머그잔, 볼펜, 티셔츠에 다양한 디자인으로 스며들었던 것에 비해 우리는 국기를 국경일 때 게양하는 것 정도로 기억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달라졌다.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얼굴에 태극 문양 페인팅을 했다. 태극기는 친근한 패션 소재가 됐다.

광복회는 그제 성명을 내고 "태극기에 리본을 매달고 시위에 참가하거나(탄핵 찬성) 태극기 봉을 휘두르고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펼쳐드는 행동(탄핵 반대)등은 태극기 신성함을 해치는 행위"라고 밝혔다.

해외에서 문득 눈에 들어온 태극기, 땀에 젖은 국가대표 유니폼 속 태극기를 보면 누구나 뭉클함을 느낀다. 태극기는 어느 한쪽의 상징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이다. 탄핵 정국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더니 이젠 태극기까지 '이 태극기'와 '저 태극기'로 갈라지는 세태까지 나타났다.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국민인가 싶다. 98년 전 3·1운동 때 온 민족을 하나로 묶었던 태극기가 바로 삼일절 날 갈라지게 됐으니 조상들 뵐 낯이 없다.

대한민국은 ‘태극기’와 ‘촛불’로 두 동강이 난 채 98주년 3·1절을 보냈다. 약 한 세기 전 일제에 맞서 온 겨레가 분연히 하나가 돼 독립을 외친 뜻 깊은 날에 후손들이 대통령 탄핵을 놓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쪽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믿고 싶다.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행사가 끝난 것도 다행스럽다.

경찰 1만6000여명이 차벽으로 완전히 두 집회를 차단했지만 곳곳에서 적의와 저주에 가득 찬 말싸움이 벌어졌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을 때 모두가 ‘문제의 시작이 아닌 끝이 돼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후 석 달간 이어진 사태는 탄핵소추가 문제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헌재가 결론을 내려도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부 법치에 승복하지 않고 '내 뜻대로 안 되면 들고 일어나겠다'는 불복 심리 때문이다.

■ 탄핵결정 승복하고 ‘큰그림’ 만들때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사태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들부터 달라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에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승복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혔으면 한다. 나아가 지지자들을 향해서도 자중을 당부하고 설득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를 포함한 대선주자들은 마지못해 '승복하겠다'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집회 불참과 함께 지지자들에게도 집회 중단을 호소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대선 주자들을 바로 보고 심판해야 한다.

태극기와 촛불시위가 입증하듯 국민의식은 정치인들의 의식보다 한 수 위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흔들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자들이 만나 탄핵심판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위해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나경택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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