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탄핵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자들은 승리했다고 하겠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다.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만이 남을 뿐이다.

대통령에게 이보다 더한 치욕은 없다.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억울한 생각도 후회나 회한도 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여러 사람이 권면했는데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 이 지경까지 왔다. 필자는 본보 칼럼(2016년 11월 21일 게재) “고래가 새우에게 먹힌 나라”에서, 시국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명치료중단(사임)을 선언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고, 헌재의 결정에 희망을 갖지 말고 물러날 때를 알았던, 뒷모습에 최선을 다한, 당당한 소신이 있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 인용은 헌법수호의지 결여의 응징

헌재는 탄핵소추절차의 하자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8인 재판관 체제나, 국회의 탄핵소추사유의 일괄표결처리 모두 적법하다고 했다. 이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정리된 것으로 적어도 헌법전문가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법이론적으로 각하주장은 처음부터 성립되기 어려웠다.

헌재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생명보호 의무위배’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소추사유로 삼은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으로, 법사위에서도 증거가 부족하고 문제가 있다고 논란됐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법조인 출신의 야당대표가 유감이라고 하는데, 지극히 유감이다. 헌재는 대통령이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으며,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비호했고, 기업의 재산권 및 자율권을 침해했다고 했다. 동시에 이러한 행위가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했다.

탄핵인용은 대통령의 위법행위만으로 부족하다. 그 위법이 대통령을 파면시키기에 족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어야 한다. 헌재는 대통령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해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보아, 파면결정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파면결정이 전원일치의 결정으로 이뤄짐으로, 국론분열의 빌미를 주지 않은 헌재 재판관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금번 헌재결정은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 중에서 촛불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무엇이 옳은 가를 알려준 결정으로, 대통령의 헌법수호의지 결여 및 헌법수호의무 위반에 대한 정당한 응징에 불과하다.

■ 오늘 기쁨은 순간…희비 나눌때 아냐

태극기 집회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모두 허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헌재결정에 대한 불복이나 저항은 헌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결국 헌법을 만든 모든 국민에게 침을 뱉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필자는 대통령의 사임을 원했고, 사임이 아니라면 탄핵인용을 바랐다. 그러나 정작 인용되니 마음이 매우 착잡하다.

대통령이 파면당한 날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날이다. 승리에 자축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까지 하다. 내가 기쁘다고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웃고 떠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또 지금 나라의 안보상황과 경제현실을 돌아보면 탄핵결정의 결과만 가지고 희비를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대통령탄핵은 정치에 대한 탄핵인데, 갈라진 민심의 통합에는 관심 없이 내편 네 편만 가르고, 선거승리에만 급급한 일부 대선주자들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누구나 졌을 때 분한 마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분함이 언제나 분함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또 오늘 이겼다고 자랑하지 마라. 오늘의 기쁨도 순간이다. 인용됐다고 대세가 대세로 이어진다고 장담해서도 안 된다. 정치는 바람이다.

김학성 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