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달그락’, ‘타탁, 타닥’ ‘따다다다다다...’ 그릇 꺼내고 간단한 요리 재료 다듬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켤 때 나는 소음들이다. 한동안 조용하다가 이윽고 사부작 사부작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먹을 것 챙겨서 제방으로 가는 소리다. 작은 딸과 막내 아들은 거의 매일 한밤중에 주방을 찾아 각자의 먹거리를 챙긴다. 그것도 교대로. 자정에서 새벽 1시 쯤이 대부분이고 늦으면 3시가 넘어서도 부엌에서 부스럭 거린다.

대학 졸업 후에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부를 하는 둘째 딸, 대학 3학년인 막내는 전형적인 야행성 인간들이다. 뭘 그리 열심히 하는지는 몰라도 밤을 꼬박 새기 일쑤다. 그러다가 아침이 훤하게 밝아 올 때 쯤이나 돼야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당연히 배가 출출할 것이고 부엌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이해하고도 남는다. 물론 자신들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조용조용 음식을 챙긴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문제는 걸핏하면 잠을 설친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내 방은 주방 바로 옆이다. 여느 집이나 어슷비슷하겠지만 주택이라는게 방음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봐야 한다. 오후 10시쯤 잠자리에 눕지만 쉽게 꿈나라로 가지는 못한다. 특히 이런 생각, 저런 걱정으로 머리 속이 뒤죽박죽일 때면 공연히 눈만 말똥말똥해지게 마련이다. 어렵사리 까무룩하고 숙면 모드에 돌입하지만 ‘그 놈의’ 바시락 대는 음향이 들리는 순간 뇌세포는 깨어나서 활동을 시작한다. 다시 꿈 속으로 돌아가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아내는 맺고 끊는게 분명한 편이다. ‘식사하라’는 통보를 한 뒤에도 자녀들이 뭉기적 거리고 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안 먹으면 지들 배고프지 내 배 곯냐?”며 미련없이 밥상을 치운다. 뒤 늦게 징징대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우리 집 식탁 예절의 불문율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예외도 있다. 학교나 학원 수업 등 정당한 사유로 인해 늦게 귀가하면 아내는 군말 없이 자식들에게 상을 차려준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은 꽤 어릴적부터 생존(?) 기법을 익혔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냉장고를 뒤져 허기를 해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지 초교 고학년 때부터 부지런히 부엌을 드나드는 걸로 진화했다. 계란 후라이와 라면으로 시작된 그들만의 조리 기능은 날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어지간히 어려울 법한 단품요리까지 뚝딱 만들어 낼 경지에 도달했다.

TV에서만 보던 낯선 향신료와 소스 등이 갈수록 주방에 수두룩하게 늘어나길래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신이 샀어요?” “아니, 거의 다 아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 온거여요, 무슨 요란스럽고 뻑적지근한 요리를 하려고 하는지ㅎㅎㅎ. 나는 뭘 어디다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모르긴 모르겠지만, 오늘도 자정이 넘으면 부엌에서 늘상 들렸던 효과음들이 방문 틈을 통해 스며들어 내 귓속을 파고들듯 하다. 이젠 익숙해 질만도 한데 아직도 영 적응이 되질 않는 걸 보면 내게 쓸데없이 예민한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 집 주방에는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도깨비 둘이 산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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