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

“가만히 보면 큰 딸은 참 복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부부가 어쩌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간혹 툭하고 튀어 나오는 얘기다. 가끔은 부러울 정도로 맏이의 성장 과정은 순탄한 편이었다.

초중고교는 별 탈 없이 나왔다. 사춘기가 1년이 넘도록 이어질 정도로 길었던 편이어서 꽤나 부모 속을 끓이게도 했지만. 그거야 뭐, 지나고 나서 보니 그럴 수도 있었겠거니 하게 된다. 자라는 청소년들이라면 다 겪는 성장통 정도로 봐줘도 무방할 듯 싶어서이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게 된 고등학교 2학년 중반부터 제법 공부에 매달리더니 제가 가고 싶어 하던 대학에도 곧바로 들어갔다.

은근히 취업이 걱정스러웠지만 그것도 이래저래 알아보더니 졸업 전에 회사 문턱을 넘어서 입성했다. 2000년대 초반 열병처럼 번지던 스펙 쌓기 덕분에 유럽 쪽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음식 때문에 적잖이 탈이 났었다. 당시만 해도 SNS가 발달되지 않았던 터라 밤늦도록 컴퓨터를 지키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 들면서 갈수록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그런 와중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을 받기까지 했고 이어서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기업들은 채용을 줄이고 현금을 쌓아 두기에 바쁘다. 그러다보니 흙수저니 7포세대니 하는 신조어들도 며칠이 멀다하고 생겨나는 판국이다. 맏이가 그나마 그런 걱정 없던 시절을 보낸 것 만 해도 참 다행이다.

딸 둔 부모들이라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착한 사위를 맞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지난해 4월 초순 맏이가 시집을 갈 때 결혼식장에서 신부 측 아버지 입장에서 몇 마디를 전했다. 나름대로 원고를 써 보겠노라고 고민을 해 봤지만 크게 잘난 명문장은 만들지 못하고 말았다. 아주 상투적이지만 결론은 ‘우리 사위, 내 딸 잘 부탁해’였다. 사실 그거 말고는 더 할 말도 없었고... 다행히 온순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사위는 우리 딸의 투정을 다 받아 주면서 알콩 달콩 사는 듯하다. 마냥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 주말은 혼사를 치른 신혼 가정의 신부가 맞는 첫 생일이었다. 오전에는 경남 밀양에서 거주하시는 시어머니가 경기도 수지까지 올라오셔서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었다고 자랑이 이만저만도 아니었다. 점심은 부부가 함께 외식을 했다고 또 뽐을 냈다. 저녁이 되어서야 친정에 온 큰 딸은 간장 게장을 맛나게 먹더니 남은 것 까지 봉지에 담아 갔다. 시장을 몇 바퀴나 돌면서 사온 건데. 그런 공은 알기나 하려는지.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아 준다’는건 참으로 오래전부터 구전돼 왔던 불문율 중의 하나였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얘기도 귀에 못이 앉을 정도로 들어왔던 말들이다. 이제는 끼니도 제대로 못 때웠던 보릿고개가 사라진 듯 하다. 그만큼 세월과 세간의 정서도 변했을 터이다. 닭고기 대신 삼겹살이나 쇠고기를 상에 올리게 된다. 잘 먹어주면 그걸로 뿌듯할 뿐이다. 요리만드는 고생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다. 곁다리 서방 입장에서야 뭐가 됐든 옆에서 열심히 거들거나 심부름 하는게 전부다.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일상이야 워낙 바쁠 수 밖에 없다. 그런 탓에 얼굴은 드문드문 보게되지만 어쩌다 찾아줘도 되게 반갑다. “지금처럼 평생 서로 아끼고 이해하면서 잘 살아 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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