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개혁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여론이 작지 않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일부 세력의 국정농단 사태에 전경련이 연루,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경제단체인 전경련 고유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에 부합하지 않는 개혁안을 내놓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은 지난 24일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이름을 바꾸고 정경유착 근절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구이자 국내 경제현안에 대한 조사 및 정책연구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로서의 긍정적 역할을 살리기 위해 싱크 탱크(think tank)로서의 역할 강화가 기대됐는데 기존 정책연구기능을 산하 연구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이관하는 수준에서 논의를 봉합했다는 지적도 있다.

전경련이 '발등의 불'인 해체론을 피하는 데 급급한 미봉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예컨대 최대 자금줄이었던 삼성 등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불가피했던 조직 개편과 예산 축소를 진정한 의미의 쇄신안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정치권은 물론 재계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10대 그룹 관계자들이 "새로운 내용은 간판을 바꾼 것밖에 없는 것 같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이는 혁신안이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인사들이 공론화한 해법에조차 못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12월말 전경련 탈퇴 입장을 밝히면서 전경련을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처럼 싱크탱크로 운영하면서 재계의 친목단체로 남기자고 제안한 바 있다. 혁신안의 골자인 기업 중심 경제단체로의 변신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나 중소기업중앙회와의 차별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음을 전경련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사실 혁신안도 과거안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 전경련은 1996년 노태우 정부 당시의 정치자금 수사가 본격화되자 기업윤리헌장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20년만에 도돌이표 쇄신안을 내는 상황에 처했다. 경제단체라는 골격을 유지하는 한 정권의 강압이나 입맛에 따라 언제든 정경유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전경련이 해체된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전경련 내부에서 반세기간 이어져 온 정경유착의 그릇된 행태는 반드시 끊어내야 하는 것이 옳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구이자 경제현안에 대한 정책연구 역할을 위한 두뇌집단으로서의 역할을 긴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조직유지를 선택한 전경련에 쇄신의지가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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