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곧 구시대의 종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 마지막 날 구속 수감됐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회에서 탄핵소추 되고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된 첫 대통령인데 영어(囹圄)의 몸까지 됐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박근혜 정권의 퇴장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돼 온 ‘박정희 신드롬’도 함께 막을 내렸다. 개발독재시대에 ‘하면 된다’ ‘보릿고개 해결’의 공적은 신화로 남고, 흑백논리, 물신주의 팽배와 정신·윤리가치 경시풍조라는 어두운 유산의 그늘은 아직 짙다.

우리 사회가 선진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국가대개조라는 시대적 명제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그렇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완성하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던 첫 여성 대통령의 참담한 추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2년차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행복을 위한 일, 나라 발전을 위한 일 외에는 다 번뇌다”라고 했다. 그런 다짐을 했던 당사자가 국가와 국민을 불행에 빠뜨린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덕목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시대적 의미

우선 박 전 대통령은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사 구분도 미흡했다. 최순실 일당의 비선 실세를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면서 공적 시스템은 마비되고 말았다. 대선주자들은 박 전 대통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선 권력 구조 개편 등을 위한 개헌에 힘을 모아야 한다. 사익보다 국익을 앞세우고, 주권자인 국민과 소통하는 ‘투명한 권력’ 행사가 절실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목도했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된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는 부끄러운 후진적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반증을 세계 앞에 보여줬다. 제왕적 권력자인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사상 초유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폭력이나 유혈사태 없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 파면 절차가 진행되고 법정에 세우는 것 자체가 우리 국민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징표인 셈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은 ‘언론·국회의 의혹 제기→검찰·특검 수사→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사법처리’로 이어지는 ‘명예혁명’ 드라마의 대단원에 가깝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는 물론 언론까지 모든 사회 제도와 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며 철저히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무혈혁명을 이뤄냈다. 한국의 헌정질서와 제도를 통째로 부정하지 않는 한 이 같은 결과를 부인할 길은 없다.

■선진국 걸 맞는 새 리더십 창출

이젠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값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다. 미증유의 이번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새로운 나라로 향하는 분기점이 돼야 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렇게 고귀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 국민은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이해 못할 바는 박 전 대통령의 자세다. 구치소에 수감되는 순간까지 사죄와 반성의 말을 하지 않았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3월12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3월21일)는 짧은 언급 이후 계속되는 침묵은 법정에서 끝까지 무죄를 다투겠다는 속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국정의 최고지도자를 역임한 이가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고 수인(囚人)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배경이다.

지도자는 사익을 멀리하면서 주어진 임무를 공명정대하게 수행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함이다. 공명정대는 지도자가 솔선수범할 때 가능하다. 국민은 자신들을 대변해서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나라의 온갖 어려운 일들을 소신껏 능력을 발휘해 나라와 백성을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도록 해 달라고 비싼 세금으로 지도자를 세운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위해서만 일하면 배척돼야 한다. 동서고금에 예외가 없다. 책임을 저버리면 지도자로서의 권한은 민초에 의해 거둬들여진다. ‘순자’가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인데, 물은 배를 뜨게 하기도 하고 배를 뒤엎기도 한다.(王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고 경책한 바가 뒷받침한다. 19대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 주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선진민주주의에 걸 맞는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길 기대한다. 구시대는 흘러갔다. 새시대를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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