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벽이 사라지고 캔버스는 무한대로

▲ 이이남 뉴미디어 아티스트의 '바니타스-2017', 55inch LED TV.

[일간투데이 홍보영 기자] "'세계적 차원의 엔지니어'는 21세기의 주요 예술가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미디어 철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의 이 같은 예언은 적중했다. 레비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오늘날 예술과 예술가의 개념에 대한 패러다임은 크게 변화했다.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예술가와 엔지니어가 공동으로 예술 작품을 창조하거나, 기술자나 공학자들이 예술 분야에 직접 뛰어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 초기 디지털 아트…사진·영화
초기 디지털 예술 작품은 1960년대 마이클 놀(Michael A. Noll)이라는 벨(Bell) 연구소의 연구원에 의해 제작됐다. 놀의 작품은 추상적인 드로잉으로 피카소의 큐비즘을 연상시킨다. 독일의 오르그 네스(Georg Nees)와 프리더 나케(Frieder Nake)도 추상적인 드로잉을 선보였다. 이처럼 초기 디지털 아트는 주로 기존 예술의 표현 형식을 모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8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예술이 디지털 기술을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기존 예술가들은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써 컴퓨터를 채택한다. 이때는 컴퓨터가 대중들에게도 널리 활용된 시기이기도 하다. 앤디 워홀(Andy Warhol),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키스 해링(Keith Haring) 등이 당시 대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다.

유망했던 국내 예술가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백남준이 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1960년대의 뉴미디어는 비디오였다. 기술적 특징에 있어 TV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비디오카메라는 민주적인 속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TV와 큰 차이를 보였다. TV의 경우 일방적인 소통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인 반면, 비디오카메라는 휴대성이 뛰어나고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자석 TV', 'TV 정원 TV Garden' 등의 비디오 아트를 전시했던 그는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이, 음극선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한 기자는 그런 그를 가리켜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제 비디오는 더 이상 뉴미디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기존 회화, 조각을 비롯해 사진, 비디오, 영화 등은 전통예술과 비슷하게 아날로그적이다. 아날로그 예술은 작품의 결과물이 원료와 물리적 유사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화가는 붓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 표면에 칠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원재료와 결과물이 물리적 연관성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빛은 카메라 렌즈를 통과해 필름에 감광된다.

반면 디지털 매체는 데이터를 수에 저장한다. 현재 모든 디지털 매체는 0과 1의 수적 체계에 데이터를 기입한다. 이 방식으로 생산된 예술 작품에는 물리적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표현 수단의 변화는 미학적인 쟁점을 야기했다. 본래 예술의 본질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있는데, 디지털 기술이 이를 허물어뜨린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저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의하면, 전통적인 예술은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으로 표현한 현존의 아우라(Aura)로써 성스러운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순수 예술의 아우라가 제거된다. 벤야민은 이를 통해 "예술은 오랫동안 종교에 기생하던 방식을 버리고, 현대 대중사회에 걸 맞는 민주적 존재 방식을 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예술이 작품의 의식가치(Kultwert)로부터 벗어나 전시가치(Ausstellungswert)로 나아감에 따라서 정치에 근거를 두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복제기술의 발전을 예술의 진보로 판단했다.

김철식 미디어앤아트 감독이 연출한 미디어아트전 '반고흐 인사이드'

◇ 디지털 기술 발달로 복원된 '아우라'
하지만 벤야민의 미학을 현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활동했던 20세기에는 사진과 영화가 예술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컴퓨터 그래픽에 주도권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미술 평론가 진중권은 '이미지인문학'이란 책에서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가 더는 과거의 회화일 수 없었듯이, 컴퓨터의 발명 이후 사진도 더는 과거의 사진일 수 없다"며, "사진이 회화 위에 구축된 고전예술의 이념을 무너뜨렸다면, 디지털 이미지는 사진과 영화 위에 구축된 모더니즘 미학의 수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벤야민에게 사진 기술은 부르주아 예술 문화를 무너뜨리는 수단이었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붕괴된다. 혼합매체가 일반화된 오늘날 하나의 매체만 고집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마노비치의 말처럼 오늘날 디지털 사진은 "사진도 그 구성요소의 일부로 포함하는 회화의 일종"이다. 게다가 사진이 부르주아 계층을 위해 제작되기도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아우라'가 복귀된 셈이다.

한편, 디지털 기술의 정점에는 가상현실이 있다. 진중권은 "컴퓨터의 어원인 'com=+putare'는 '함께+바라보다'라는 뜻을 갖는다"라며, "컴퓨터는 자연의 모든 현상을 0과 1로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원에 걸맞게 그렇게 분석된 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형상으로 합성할 수도 있다. 이때 탄생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가상'"이라고 언급했다.

제프리 쇼의 '읽을 수 있는 도시'는 가상현실의 고전이다. 관객은 인터페이스로 제공된 자전거를 타고 뉴욕 맨해튼이나 암스테르담의 구조를 재현한 가상의 도시를 탐험할 수 있다. 쇼는 "디지털시대의 인간은 봉합선 없이 이어지는 아찔한 축을 따라 현실과 가상 사이를 오가는 파타피지컬한 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가상현실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은 디지털 예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디지털 아트의 일종인 웹 아트의 경우, 관람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라이브 퍼포먼스 형식의 작품도 등장했다.

예술가들은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창작활동을 펼친다. 빌 시먼(Bill Seaman)의 Passage Set/One Pells Pivots at the tip of the Tongue(1995), 칼 심스(Karl Sims)의 Galápagos(1995) 등이 초기 사례다.

빌 시먼 작품의 경우 관람자가 스크린상의 특정 지점을 누르면 새로운 이미지와 텍스트가 무작위로 변화되며 펼쳐진다. 관객 참여에 따라 작품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로써 예술가와 감상자의 전통적인 구분이 붕괴된다.

이처럼 디지털 아트는 예술과 기술, 현재와 과거 예술 양식의 결합을 내포하고 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 단말기가 미술관을 대체한다. 이제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의 문턱을 넘을 필요가 없어졌다. 미술관의 벽이 허물어졌고 화가들의 캔버스는 무한대로 확장됐다. 가상과 실재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새로운 예술 형식이 지향하고 있는 융합과 창조, 개방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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