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4월19일과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공직선거법 제82조의2 제4항(초청대상 후보자토론회)에 따른 19대 대선 공식 TV 1차, 2차 토론회(총3회)를 스탠딩 방식으로 진행했다. 기존 토론과 다른 것은 스탠딩으로 또 대본 없이 했다는 점이다. 형식면에서 무 대본은 대선 TV토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으나 내용면에서는 말꼬리만 잡다가 허둥지둥 끝나버렸고, 정작 치열하게 검증해야 할 정책들은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 스탠딩은 자리가 주는 위계와 권위를 없애 대등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함인데, 5인 토론회에서 스탠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박 겉핥기식 토론은 이미 5인 토론회 구조에서 예견됐고, 시간이 아깝다고 할 정도로 실망만 주었다. 후보가 질문하는 동안 다른 후보가 끼어들어 토론을 산만하게 하고, 심지어 논점을 흐리게 하면서 편까지 들어주어 공정하지도 못했다.

■ 5인토론 구조로는 ‘수박겉핥기’

미국은 대통령선출에 있어 양자 TV 스탠딩 토론이 제도화되어 있다. 미국은 비영리민간기구인 대통령토론위원회가 3회에 걸쳐 각 90분, 스탠딩으로 끝장토론을 한다. 모든 후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지율이 15%이상인 후보자로 한정하고 있어, 통상 민주와 공화 두 후보로 제한돼 있다. 대선후보 간 TV토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후보선택에 결정적이다. 특히 경쟁하는 두 명의 막판후보에 대해 최종결심을 굳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대선후보들 간에 형평보다는 유권자의 선택권을 더 존중하기에 지지율 15%이상의 후보만으로 최종대결을 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5인 토론회이다 보니 후보에 대한 효율적인 검증이 어렵다. 5인의 난상토론은 후보의 비전이나 정책을 심도 있게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검증을 왜 하는가의 본질적 질문에 답하기 어렵게 된다. 5인 토론회는 공직선거법이 후보토론회의 참가 자격을 “법정”(여론조사지지율 5%이상, 5인 이상의 국회의원을 가진 정당후보, 직전 대선 또는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3%이상을 얻은 정당후보로 제한”하고 있음)하고 있고, 5인 후보가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대선부터는 토론참여요건을 선거비용전액보전 또는 기탁금전액반환조건이 되는 15%로 상향조정돼야한다.

■ 지지율15% 제한…검증집중도 높여야

그렇다고 금번 선거에서 양자토론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실시에 법적 장애도 없다. 토론주최 언론기관이 지지율 15%를 넘는 후보를 대상으로 양자 또는 삼자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자토론은 결선투표제가 없는 현행 선거제도를 보완해주며, 검증의 집중도를 높이면서, 후보를 비교적 속속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후보 간 형평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강한데, 후보 간 형평이 유권자의 선택권보다 앞 설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5인 토론회는 후보 개인에게는 (다음을 위해서도)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더 없는 기회겠지만 검증의 집중도가 떨어져 검증의 효율을 저해한다. 사실상 당선이 어려운 후보까지 초청해 의견을 듣는 것은 올바른 후보선택에 방해가 될 뿐이다. 후보들이 저마다 좋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선 TV 토론은 그런 것들을 비교분석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최종 두 사람 중 누구인가의 자리가 돼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위험지역이다. 경제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라지만, 국가의 존립과 안보가 매우 위태로운 그야말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탄핵을 경험하고도 대통령검증에 또 실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5인 후보의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의 제공이다. 대선후보들은 저마다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지만 누가 되더라도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5년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분명한 후보를 선출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5지의 지문 중, 정답을 고르려할 때 결국은 두 지문을 놓고 고민하다 정오(正誤)를 가리게 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했다. 그래서 양자 토론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김학성 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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