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

우리 역사에서 가야는 고대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나 본격적인 왕권중심의 고대국가로 발전되지 못하고 느슨한 연맹체로 유지되다 신라에 복속된 국가로, 가을 한철 야산에 피었다가 이름 없이 사라지는 들국화 같은 운명이었지만 그 뿌리는 약초로 긴요하게 쓰여 우리 역사에 해양력의 근간을 심어준 자랑스러운 일면을 지니고 있다. 최근 가야 역사 재조명 바람이 부는 가운데, ‘역사 속의 물류, 물류인’ 저자 정필수 박사는 우리나라 해양력의 원천으로 가야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어 4회에 걸쳐 그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연대기적 변천 과정으로 본 가야는 변한의 12소국, 소국 연맹체, 초기 고대국가 등의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기원전 1세기 낙동강 유역에 세형동검 관련 청동기 및 초기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가야의 문화 기반이 성립됐다. 6세기 초 대가야는 가야 북부의 대부분을 통괄해 초기 고대국가를 형성하기도 했으나, 불행하게도 가야 전역을 통합하지는 못했다. 532년 대표적 종주국인 김해의 금관가야가 멸망하고 562년 고령의 대가야국이 신라에 멸망함으로써 나머지 가야 소국들도 모두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 신화는 실화를 쓰는 초간

초기 부족 시조는 대부분 신화적 기원에서 시작한다. 가야 시조인 김수로왕도 예외가 아니며 그 신화는 다음과 같다. “아직 나라가 없던 때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흩어져 살고 있던 어느 날, 주민들이 모여 기원을 드렸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그릇이 내려왔다. 그 속에 둥근 황금색의 알이 6개 있었는데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한 것이 수로였다. 주민들이 가락국의 왕으로 받들었고 나머지 아이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됐다.”

이와 함께 김수로왕 신화에서 부인인 허황옥(許黃玉)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도 중요하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옥은 본래 아유타국(월지국)의 공주인데 부왕과 왕후가 꿈에 상제의 명을 받아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했다. 공주가 배를 타고 김해 남쪽 해안에 이르자 수로왕은 신하들을 보내어 맞으며, 황후로 삼았다고 전한다.

김수로왕의 신화는 가야가 6개 부족의 연맹국가임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들이 낙동강 하류 서쪽일대와 경상남도 해안 일대를 근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이 매우 복잡해 천연의 요새를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곳곳에 자생적인 부족이 존재했다. 이 중 주요 6개 부족이 연합해 가야를 세웠는데 6개 부족이 연맹한 이후에도 주변 여러 부족과의 경쟁이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해상 교류에서 시작된 가야 문화

두 신화적 얘기에서 외부 해상세력을 주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먼 바다의 해상세력과의 연맹을 시사한 것이 바로 ‘허황옥’의 이야기다.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허황옥이 정말로 아유타국에서 왔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허왕후가 외국으로부터 김해에 정착한 이주민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허왕후의 이주 및 혼인 설화와 약 2천년이 지난 현재, 아직까지 남아 그녀의 능 앞에 서있는 석탑에 얽힌 이야기는 가야가 성립시기부터 외국과 교류했으며 바닷길을 거쳐 새로운 선진문물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하고 있다.

또한 가야가 고대국가 형성에서는 한반도내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철기문화가 가장 먼저 발전하고 서역 유물인 유리 장식품이 가야 고분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해상세력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허황옥의 이야기는 가야가 ‘외부 해상세력과 연계’됐다고 추정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