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모략과 배신, 협잡이 난무했던 일본 전국시대를 은근과 끈기로 이겨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이 말을 교묘하게 여러 번 활용한다. 오랜 종속관계였던 이마가와(今川)가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 사원세력의 반란으로 위기에 처한 그는 위 말을 하며 화해의 손을 내민다. 역시나 오랜 전쟁에 지친 승려들도 이에 응해 무장을 해제한 그때, 그는 사원을 허물어뜨린다. 협약 위반이라고 항의하는 승려들에게 그는 말한다. "원래 여기는 절이 없는 맨땅이었다.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절을 없애는 것이다"

전국을 통일한 뒤 마지막 눈엣가시였던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賴)를 제거하는 데도 이 말이 사용된다. 히데요리의 거성이었던 오사카성은 깊은 해자에 둘러 쌓여 있어서 난공불락이었다. 단번에 함락시키기 힘들다고 판단한 이에야스는 꾀를 낸다.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는 조건으로 강화협상을 체결한 것이다. 히데요리측이 이제 전투가 끝났다고 방심한 틈에 깊은 해자를 메워버린다. 약속 위반이라고 항의하는 히데요리측에 그는 역시나 "원래 여기는 해자가 없었다.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해자를 없애는 것이다"고 맞받아쳤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이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6월 도시바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한다고 할 때만 해도 매각 협상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시바 협력업체이자 인수전 참여자이기도 했던 웨스턴디지털(WD)이 지리한 소송전 전략을 펼치면서 혼전을 거듭하더니 돌고 돌아 다시 애플이 포함된 신 한·미·일 연합에 손짓을 하고 있다.

오는 20일 본계약을 체결한다고 하지만 지난 6일과 13일 이사회에서도 최종 결정은 미룬 채 막판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WD와 KKR 연합에서 신 한·미·일 연합으로 선회한 전례를 봤을 때 미덥지 못하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꼼꼼하고 철저하게 협상문을 작성해 복합적인 맥락의 문구를 '희망적인 사고(Wishful Thinking)'로 가볍게 여겨 낭패를 봤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상대들과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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