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획특집팀 정우교 기자
[일간투데이 정우교 기자] 초등학생 시절, 어쩌다 교육청 장학사라도 방문을 하면 우리들은 그동안 하지 않던 대청소를 하곤 했다. 걸레질하고, 창틀도 닦고, 잡초도 뽑고…그러다가 같은 반 여자아이 한명이 뙤약볕에 쓰러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을 위해 수업시간도 빼놓고 청소했는지 모르겠다. 잠시 IT 관련된 일을 했던 시절, 거의 매일 새벽 두세시에 퇴근해 집에서 선잠을 들기 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라는 생각말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침,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었다. 휴지통에 머리를 쳐넣은 채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주말이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바로 퇴사했다.

지난해 사망한 넷마블 개발자도 회사를 다니던 시절, 혹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게임회사에서는 보통 크런치 모드라고해서 신작 출시 및 업데이트 전에 회사에서 숙식을 하며 많은 일을 한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고인은 불규칙한 야간근무 및 초과근무가 지속된 크런치 모드 후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 8월, 넷마블 직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고인은 발병 전 12주 동안 과로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발병 7주전에는 1주에 89시간의 근무시간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이는 고인뿐만이 아니다. 국감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넷마블 근로자의 건강상태는 최근 5년간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특히 정신질환의 경우, 매해 급증해 올 상반기에만 203건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넷마블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고인이 사망하고 넷마블 및 관련업계의 잘못된 노동관행이 논란이 됐던 지난해, 구로디지털단지의 밤을 밝게 비추던 넷마블 '등대'는 잠시 꺼진 적이 있었다. 그 현상은 당시 주변 직장인들에게 회자가 됐었고 본 기자도 퇴근할 때면 한동안 그곳의 불빛을 주시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등대의 불빛이 다시 켜졌다고 한다. 어쩌다 방문하는 장학사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뙤약볕에도 학생들에게 잡초제거를 시켰던 교장선생님의 행동과 이것이 과연 다를게 무엇일까. 정작 쓰러지고 다쳤던 이들은 그때는 초등학생들이었고 지금은 오늘도 야근을 계획하고 있는 직장인들이다. 2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쓰러진 우리들을 업고 뛰어주지 않았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지 7개월이나 지나 '업무사항재해'로 인정받은 넷마블 개발자의 사례를 보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장시간 근로와 과로를 당연시하면 안된다", "근로개정법 개정안" 등의 발언에 그나마 기대를 가져볼만하다. 달콤한 개선안이 대한민국의 OECD 근로시간 순위를 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본다. 강력한 법 개정과 경제주체들의 적극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20년 후에도 대한민국의 '근로환경'은 제자리 걸음일뿐이다.

등대는 구로디지털단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 등대들은 직장인들의 고민,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에 대한 답을 비추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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