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대 명예교수·시인

3년 전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내란음모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RO조직원 7명에 대한 2심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 고법에 이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더니, 오늘날엔 원불교 교무들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반대집회를 벌이고 있다.

그 까닭은 사드를 배치하려는 곳에서 500미터 거리에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 정산종사께서 태어난 곳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한 원불교 성지에 전쟁 무기를 두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원불교는 평화의 성자 탄생지에 생명을 죽이는 무기가 설치된다면, 향후 무엇을 근거로 평화와 정의를,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이 사드는 사람을 살상하는 전쟁 무기가 아니다. 북한에서 살상용 로켓이 날아올 때 중간에서 격퇴시키기 위한 전쟁 방어용이다.

■ ‘성지 보호’ 이유로 사드 반대집회

원불교의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에 국내 7대종교(불교,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원불교, 유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종단 협의체인 KCRP는 ‘개종교 대표의 호소문’을 발표하고 “평화의 상징, 원불교 성주성지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마치 칼을 든 강도가 담을 넘어오려고 하는데, 화단의 꽃이 상하면 안 되니까 담장 밑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말과도 같은 이치다.

사명대사(四溟大師)는 나라가 위난(危難)에 처하자 승군(僧軍)을 조직하여 왜군(倭軍)과 싸웠다.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 즉 승군 총사령관이 되어 의승병 2000명을 이끌고 게릴라전을 전개하면서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했다. 1593년 1월 명나라 원군과 합동작전으로 평양성 탈환의 혈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나라가 망했는데, 99칸 기와집이 무슨 소용이냐고 몽땅 팔아서 200여명의 권속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길러내고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이상룡 선생이 떠오르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원불교가 나라의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라가 망하면 99칸짜리 기와집이 소용없듯이, 이 나라가 불바다 되면 원불교 성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원래 원불교는 정신이 살아있었다.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는 생활불교로서 착한 품성을 기르는 강점이 있었다.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이라 해서 바른 인성을 길러왔다고 보는데, 이번 사드반대 처사는 이 강령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상호 위하여 존재하는 방식으로 연결돼 있다. 사람도 개인이 가정을 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개인이나 가정은 사회나 국가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가정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불교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을 강령에서 강조하면서도 국가가 위난에 처해있을 때 이를 외면하고 있다. 롯데는 토지를 제공했다고 해서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견디고 있다. 나라가 위태롭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다. 원불교 정전의 수행(修行)편 첫 머리에는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이 없지만 경계(境界)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을 세우자”로 기록돼 있다.

■ 국가위기 외면한 처사에 개탄

그들이 자행하는 사드 반대집회는 불교정전의 말씀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정각정행(正覺正行)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드 말고 평화”“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외친다.

종교의 처지에서 보게 되면 성지란 절대다.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신성한 곳이다. 신앙인의 처지에서 보면, 신문에 들어있는 세상 얘기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의식으로 보게 되면 종교는 신문 면 중 끝부분에서 또 일부를 차지한다. 앞쪽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국제의 순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 끝 쪽의 문화면 중에서도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등의 예술이 지나가면서 종교는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된다.

새가 날 때는 시야가 드넓은 하늘이지만, 일단 둥우리로 돌아오게 되면 짝과 몇 마리의 새끼만 보게 된다. 그러니 불교정전 수행편의 말씀대로 경계 없이 마음을 키워야 할 것이다. 공중에 떠있는 종교는 우리 인간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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