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대 명예교수·시인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와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이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 없거든요. 흥.”

이 글은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誤發彈)’에 나오는 한 대문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형 송철호의 말에 반발하는 아우 송영호의 말이다. 여기에서는 힘 있는 권력자나 부자를 까마귀로 비유했다. 그런데 오늘날엔 법을 어기는 게 권력자와 자본가만이 아니다.

■ 범법자가 장관 만나는 세상

자본가는 불법 근처에만 가도 잡혀서 들어가지만, 귀족노조는 불법을 저지르면서 압력을 가해도 누구 하나 입도 뻥끗하지 않는 세상이다. 도망 다니는 범법자가 장관을 만나고, 감옥 살고 있는 동료 범죄자를 석방하라고 국회에서 데모를 해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게 나라냐.” 하는 말이 나돈다.

수배돼있는 범법자가 국회에서 난동을 부려도 경찰이나 검찰도, 국회도, 청와대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이게 나라인가? 그러니 오늘의 까마귀는 금력이나 권력자보다도 금력과 권력자를 깔아뭉개는 귀족노조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대통령은 말 한마디 없다. 귀족노조에게 그렇게도 할 말이 없는가? 귀족노조는 우선 자신들의 고봉밥을 덜어서 비정규직에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가에게도 고봉밥을 덜어서 비정규직에 주자고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공생공영(共生共榮)하는 공의주의 사회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데 귀족노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는 26위로 3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노동 분야 등이 크게 뒤처졌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효율성은 77위에 그쳤다. 고용 및 해고 관행이 113위, 정리 해고 비용이 112위에 머무른 게 잘 보여주고 있다. 강성노조, 곧 귀족노조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 노조의 ‘고봉밥’ 덜어 비정규직에

요즈음 민노총은 마치 공산당 고급당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민주당)도 쩔쩔 맬 정도로 기세등등하기 때문이다. 수배중인 이영주 민노총 사무총장 등 민노총 조합원 4명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점거해 농성을 벌여도 검찰이나 경찰은 체포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가 이렇게 나보란 듯이 시위를 벌여도 되는가.

더구나 그들은 시위로 76명의 경찰관을 다치게 했고, 43대의 경찰버스를 파손시켰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가재산을 파괴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수감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을 풀어주라니 이건 법(허수아비)을 타고 앉은 까마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2년 동안 민노총 사무실에 은신하면서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온다. 경찰은 민주당 눈치를 살피느라 수배자를 눈앞에 두고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까마귀들의 떼법, 불법이 실로 걱정스럽다.

우리나라에 ‘춘향전’이 있듯 일본에는 ‘주신구라(忠臣藏)’가 있다. ‘어떤 산도 군주의 은혜보다 가볍고, 한 가닥 머리카락도 신하의 목숨보다 무겁다.(萬山不重君恩重, 一髮不輕我命輕)’는 한문 대구가 새겨진 단도를 찬 오이시 이하 47명의 아코 사무라이들은 주군을 위해 복수를 하고 막부의 법을 기다렸다. 그리고 막부의 명에 따라 모두 할복했다. 이들 47명은 뜻을 이룬 후 자신들의 합당함을 막부에 알리고 막부의 대응을 기다렸으며 법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욕심과 법의 상관관계는 어떠한가. 한국과 일본, 법을 허수아비로 아는 쪽이 어느 쪽인지 새겨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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